내년 1분기 중 제정, 표준계약서 작성 등 명시
노동계 “노동자성 부정하는 전제하에 입법 추진”
정부가 배달기사 등 스마트폰 앱 등을 매개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벙 제정을 추진한다. 이에 노동계는 기존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고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별도의 법안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플랫폼 종사자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제정법안은 노동법상 근로자인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서는 노동법을 통한 보호가 우선임을 명확히 하고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닌 플랫폼 종사자도 표준계약서 작성 등 기본적인 노무 제공 여건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내년 1분기 중으로 제정될 계획이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에는 플랫폼 기업과 플랫폼 종사자의 소속 업체 등이 지켜야 할 사항을 명시한다. 이와 함께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종사자에게 업무 배정, 고객 만족도 등 평가 기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플랫폼 종사자가 이의 제기를 할 경우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또 플랫폼 종사자와 고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플랫폼 기업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플랫폼 종사자는 자유롭게 단체를 결성해 보수 지급 기준 등과 관련해 사측과 협의할 수 있다.
지금까지 플랫폼 종사자는 대부분 프리랜서처럼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노동시간 제한 등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저임금 장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배달기사의 경우, 매개가 되는 스마트폰 앱의 알고리즘에 따라 강도 높은 업무 통제를 받고 있는데다 고객 만족도나 평점이 낮을 경우 제재를 받는 등 사실상 프리랜서보다는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총 179만명, 전체 취업자의 7.4%에 달한다. 기업이나 소속업체로부터 업무 배정과 평가를 받는 플랫폼 종사자는 22만명. 전체 취업자의 0.9%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안은 플랫폼 종사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별도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 공산이 크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의 직종이 배달기사 뿐 아니라 가사 도우미, 디자인, 번역, IT개발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직종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근로자에 해당하는 플랫폼 종사자가 자영업자로 오분류되지 않도록 전문가 중심의 자문 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날 대책에는 플랫폼 종사자의 직종별 표준계약서 개발도 포함됐다. 현재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등 16개 직종은 표준계약서가 마련돼 있으며 해당 표준계약서에는 불공정거래 금지, 종사자 안전관리, 분쟁 해결 절차 등을 규정돼 있다. 정부는 배달업에 관련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제정해 인증제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등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플랫폼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에 걸림돌이 돼온 전속성 조건을 폐지하고 직종별 특성을 반영한 보험료 징수 체계 등이 마련된다.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복지기본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 1인당 최대 20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 융자 등의 혜택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2022년까지 플랫폼 종사자의 퇴직공제 등을 위한 공제조합을 도입한다. 배달기사가 사고를 당할 경우 손해배상을 하는 사업자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
이재갑 장관은 이날 발표한 대책에 대해 “플랫폼 종사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내년 1월 고용노동부에 플랫폼 종사자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