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변압기 등 한국산 제품에 부과한 고율관세는 부당
60%넘는 관세 부과하는 근거조항은 WTO협정 위배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가 된 조항을 두고 다툰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승소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WTO 패널은 이날 미국이 한국산 철강·변압기에 대해 불리한 가용정보(AFA) 조항을 적용해 고율의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부과한 조치 8건에 대해 모두 불합리하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AFA 조항은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에서 조사 대상 기업이 자료 제출 등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미국 상무부가 해당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활용해 자의적으로 고율 관세를 산정하도록 정한 규정이다.
미국은 2015년 8월 관세법을 개정한 이후, 지난 2016년 5월 도금강판 반덤핑 최종판정에서 관세율 47.8%를 적용한데 이어 한국산 제품에 최대 60.81%에 이르는 고율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해왔다.
한국 정부는 AFA 조항의 불합리하다며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측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미국의 조치가 개선되지 않자 지난 2018년 2월 WTO에 이를 제소했다. WTO 패널은 미국측 조치 8건 모두 WTO 협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제소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이 AFA를 적용해 고율의 관세를 매긴 문제 사례로 철강재·변압기 등 8개 품목을 들었는데 해당 품목의 연간 수출 규모는 16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한국 정부의 WTO 분쟁 중 가장 큰 규모다.
WTO는 AFA 조항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라 미국 조사 당국이 조항을 적용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덤핑 조사 당국이 수출업체가 제출한 이외의 자료를 활용해 관세율을 산정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WTO는 미국 조사 당국이 대체 자료를 찾기에 앞서 수출업체에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충분히 설명하고 제출된 자료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당국이 큰 부담 없이 검증할 수 있는 자료는 원칙적으로 사용해야 함에도 미국 측이 이를 무시했다고 봤다.
세부적으로는 우리 측이 총 37개 쟁점에서, 미국은 3개 쟁점에서 승소했다. 이번 WTO의 결정으로 앞으로 미국측의 AFA 남용에 제동이 걸리고, 한국 기업들의 AFA 대응도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업체의 마진율은 통상 5% 안팎”이라면서 “미국이 그간 마진율을 크게 웃도는 관세를 부과해 수출을 포기하는 업체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분쟁 기간 3년 동안 2만5000장 분량의 증거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치열한 구두와 서면 공방을 벌인 끝에 승소를 끌어냈다”며 “이번 판정으로 8개 품목뿐만 아니라 다른 수출 품목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AFA 적용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측은 한국 정부가 WTO에 제소한 이후,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대한 반덤핑 연례재심을 통해 관세율을 원심보다 대폭 낮춘 바 있다. WTO 제소 자체만으로 사실상의 효과가 본 것이다.
미국이 상소하지 않는다면 이번 판정은 법적 구속력이 발휘돼 문제가 된 8건에 대해 ‘불리한 가용정보’를 활용하지 않고 다시 조사해야 한다. 다만 미국이 상소할 경우, WTO 상소기구가 마비된 상황에서 이번 분쟁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