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38˚C’展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계기 삼아 인류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고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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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민호기자

소격동 학고재는 새해 첫 전시로 본관에서 ‘38˚C’ 展를 열고 있다. 팬데믹 시대를 계기 삼아 인류와 세상의 관계를 고민하고자 마련한 전시다. 학고재 소장품을 중심으로 동시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몸, 정신, 물질, 자연 등 4개 범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함께 진행된다. 지난 12월 1일(화), 학고재 오룸에서 온라인 전시를 먼저 개막했다. 4가지 소주제에 따라 총 9개의 방으로 구성한 가상 전시장에서 국내외 작가 14인의 작품 37점을 주제별로 선보인다.

그중 선별한 작가 10인의 작품 16점을 오프라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범주에 따라 분류한 작품들을 학고재 본관에 조화롭게 재배치했다. 실제 삶에서 몸과 정신, 물질과 자연은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 맺으며 어우러진다.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의 화면도 독립된 주제에 머무르지 않으며, 4가지 범주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몸의 형상에 내적 고민을 투영하고, 물질과 자연의 상호 작용을 고심한다. 주위의 환경을 탐구하는 일을 통해 정서적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사전 개막한 온라인 전시에서 큰 호응을 얻은 안드레아스 에릭슨(b. 1975, 스웨덴 비외르세터), 이우성(b. 1983, 서울), 허수영(b. 1984, 서울) 등의 작품을 학고재 본관에서 선보인다. 지난해 대구미술관 전시로 화제가 된 팀 아이텔(b. 1971, 독일 레온베르크)의 소형 회화도 여럿 포함한다. 아니쉬 카푸어(b. 1954, 인도 뭄바이), 주세페 페노네(b. 1947, 이탈리아 가레시오)와 박광수(b. 1983, 강원도 철원)의 회화가 한 데 어우러진다.

최근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연 장재민(b. 1984, 경상남도 진해)의 회화도 살펴볼 수 있다. 이안 다벤포트(b. 1966, 영국 켄트)의 대형 회화와 판화 연작은 각각 2008년, 2007년 이후 처음 전시에 선보이는 것이라 반갑다. 중국 동시대 작가 천원지(b. 1954, 상하이)의 명상적 화면도 8년 만에 수장고에서 나온다.

인류가 아프다. 불현듯 등장한 전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며 이번 세기 초유의 팬데믹을 야기했다. 2020년의 디스토피아는 외계 생명체나 로봇, 어떠한 신화적 존재가 아닌 현실 세계의 작은 균으로부터 시작됐다.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이미 이 불청객이 우리가 겪어낼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이다. 질병 앞에서는 특권이 없다. 사람의 몸은 연약하여 낯선 균의 침투에 쉽게 달아오른다. 그래서 체온이 감염의 지표가 됐다. 고열의 기준점은 약 38℃, 이를 넘기면 공공장소의 출입이 제한된다.

사진: 이민호기자

온 세상 사람들이 몸에 주목한다. 지키기 위해 격리하고,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리적 활동이 제한되니 가상 현실이 팽창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각기 다른 가치를 바쁘게 좇던 우리는 모두 함께 멈추었다. 비로소 주위를 돌아본다. 위험한 체온 38℃는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목욕물의 온도이기도 하다.

커다란 세상 속 작은 생명으로서 문득 겸손해진다. 도달할 수 없는 한도와 깊이로 인간의 몸을 품어온 환경을 떠올려본다. 이번 전시는 팬데믹 시대를 계기 삼아 인류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 보기 위해서 마련한 의미있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