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돌풍>: 절반의 세계관, 절반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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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돌풍>: 절반의 세계관, 절반의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을 봤다.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본 이유는 <추적자>, <황금의 제국>을 쓴 박경수 작가 때문이다. 그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문학적 아포리즘 대사들을 쏟아내며 사건을 몰아붙이고 뒤집고 또 뒤집기. 시청자가 킬킬거리거나 한숨 돌릴 여지는 주지 않는다. 일단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종착지까지 규정 속도 이상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소소한 재미를 바라는 일반 시청자에겐 지루할 수 있다. 또야? 하고 식상하고 지치게도 한다. 그러나 워낙 세게 밀어붙이니까 승차하고 나면 중도 하차는 쉽지 않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기업, 우파(보수) 정권, 공권력에 대한 신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시각은 어디까지나 소위 말하는 진보적 세계관에 속해 있다. 한국의 기업은 정치를 타락시키는 정신 썩어 빠진 경영자 가족 집단으로 매도되는 재벌로 표상된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왜 그들이 정치인에게 벌벌 기며 뇌물을 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기업 덕에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들 자신도 덕분에 얼마나 누리고 살았는지에 대한 자각도 없다.

북한과의 연계도 좌파가 아닌 우파와 짜고 치는 고스톱 관계 정도로 써먹었다. 518이 북한과 관련 있다는 건 태극기 집단으로 대표되는 보수 꼴통이나 믿는 짓거리라고 아예 못 박았고, 한국을 키운 군사 정권은 변함없이 용서받을 수 없는 독재 정권, ‘민주화’를 열망하는 순수 대학생을 잡아다 물고문이나 하는, 존재해선 안 될 추악한 시대였다고 천명해버렸다.

무엇보다 586,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그 실체는 모르거나 부정하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씁쓸했다. 이 드라마엔 ‘민주화’라는 명분에 대한 환상과 노스탤지어가 깊고 강렬하게 깔려 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이렇게 외친다.

“한때 민주화를 갈망하며 그토록 순수하게 몸과 영혼을 바쳤던 586아, 지금 얼마나 타락했는지 니들 꼬라지를 봐라. 너희가 흉보던 독재 정권과 무엇이 다르냐?”

그들이 바랐던 초인, 진보라는 이상을 실현시켜 줄 정의의 화신의 모델이 ‘박동호’다. 그러나 그야말로 ‘거짓을 이기는 건 더 큰 거짓’밖에 없다고 믿으며 살인으로부터 개혁을 시작하고 자살로 마무리하는 가장 비뚤어진 괴물일 뿐이다.

그래도 이 드라마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눈에도 그 진보라고 하는 좌파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보이긴 했구나, 참기 어려웠구나, 부정할 수는 없었구나, 덕분에 이 미친 시대를 그린 절반의 드라마가 나왔구나.

글: 김규나/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