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법원 선고, 일본이라면 파기자판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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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면 파기자판? – 한국과 일본, 대법원의 판결 구조가 다르다

[미디어원=이진 기자] 대법원이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심리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일본 같았으면 파기자판으로 끝냈을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최고 법원 판결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파기환송이란, 상급심이 원심 판단의 법리적 오류나 사실 오인을 지적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내는 절차다. 이재명 사건처럼 1심과 2심의 판단이 다를 경우, 대법원이 직접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다시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의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에 해당)는 전체 판결의 약 54%를 파기자판(破棄自判)’으로 처리한다. 파기자판이란, 상급심이 원심을 파기하는 동시에 직접 유무죄 또는 형량을 최종 확정짓는 방식이다. 한국 대법원의 파기자판 비율이 약 0.073%에 불과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판결 구조와 철학의 차이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소는 16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가 다수결로 판단을 내리며,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릴 경우 두 판단 중 하나를 그대로 채택해 유무죄 혹은 형량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소모적 절차를 줄이고 사회적 혼란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것에 초점을 둔 제도다.

이번 이재명 사건처럼, 1심은 유죄(벌금 300만원), 2심은 무죄, 대법원은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이처럼 판단이 엇갈릴 때 일본의 최고재판소라면 1심을 선택해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왜 파기자판을 꺼리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헌법상 ‘사실심 법칙주의’와 ‘충분한 심리주의’가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 대법원이 법리 판단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 재판 운영 철학, 그리고 정치적 사건에 대한 신중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히려 사건의 종결이 지연되고, 정치권과 여론이 혼탁해지는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이 이 구조를 어디서 배웠냐는 것이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시스템을 일본이 20세기 초에 도입했고, 이후 한국은 일본을 통해 유사한 구조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과감하게 제도 개혁을 통해 신속성과 확정성에 무게를 실었고, 한국은 아직도 그 구조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한국 대법원에는 수많은 재판연구관과 판결보좌 인력이 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인력도 적고 사건도 선별적으로 다룬다. 그만큼 합리적 분기와 판결 종결의 효율성이 강조되는 시스템이다.

이번 이재명 사건은 단지 유무죄 여부를 떠나, 우리 사법 체계가 과연 신속한 정의 구현과 종결의 원칙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일 이번 사건이 일본에서 다뤄졌다면, 아마도 대법원이 “파기자판”으로 이미 유죄를 확정짓고 사법적 혼란을 끝냈을 것이다.

‘신중한 정의’와 ‘신속한 정의’, 그 사이에 서 있는 한국 사법부.
이번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운명을 넘어서, 우리 사법 시스템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