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신달파 칼럼니스트) 외출했다가,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마침 눈에 들어 온 뷔페식 백반식당에 들어갔다.
주변에 소규모공단과 오피스들이 있어서 그런지, 남녀 근로자들로 북적인다. 근간에 들어와서 뷔페식 백반집이 유행이다. 통상 5천 ~6천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음식들이 제법 먹을 만하다.
이런 류 식당의 성업은 불경기 탓도 있지만, 식생활습관의 변화에도 기인한다. 독거세대가 늘고, 혼밥, 간편식을 지향하는 조류 외에 잔반재활용에 대한 오랜 혐오에 대응하는 상쾌한 착상이다.
반찬이 푸짐하게 나오는 식당일수록 속으로 잔반재활용을 걱정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마춤이다, 인력관리면에서도, 종업원이 많이 필요한 갈비집을 접고 이런 셀프서빙방식을 택한 식당업주도 많고, 기업내 구내식당을 접고, 이런 뷔페를 이용하기로 한 기업주도 꽤 있으리라 짐작이 간다.
식당 안의 손님들은 대다수 젊은층 근로자들인데, 마치 군부대 식당처럼 활기가 있고, 먹는 속도도 빠르다.
식사 후에 후식으로 커피를 뽑아들고, 젊은이들 틈에 가서 앉아 보았다. 삼삼오오 둘러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사문제에 대한 애기도 들려온다. 실업급여, 사대보험, 이직문제 등등. 귀동냥을 하던 중에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와서 귀가 솔깃했다.
우리나라 정국이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놀라운 형국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측이 굳이 군사적책동을 안 쓰더라도, 현재의 남측지도부와 共謀協力하여, 빠른 속도로 소통과 왕래를 늘려서, 연방제까지 끌어내고 사회주의 완성의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남북이 공동지도체제로 들어가면, 개헌이 필수인데, 이때 일반국민이 지금은 상상치도 못 할 놀라운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야기의 흐름에 매우 흥미가 생겨서 몸을 돌려 앉아 경청했다. 웬 30대 정도 되는 근로자가 동료들 세 명을 놓고 열강을 하고 있었다.
여론을 장악하고, 의결기관인 국회도 장악하고 나면 개헌을 하게 되는데,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은 모두 국유화하며, 개인의 재산까지도 일정액수 이상은 국가가 관리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선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 정부들이 토지몰수, 무상분배, 무상배급, 무상복지의 정치제도를 선포했듯이, 경제운용면에서 약간 온건성과 재량성을 곁들이는 線에서, 국내의 토지를 비롯한 모든 자산을 일시에 거두어 들여서 公社化하고 재분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임대사업자 중에 부산의 모씨는 주택을 600여 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재산도 국가에서 公社의 柱式을 주는 형태를 취하든 어찌하든, 전부 압류하여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면, 영세한 서민들에게 저가에 주택이 배급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계획은 이미 수립되어 있어서 전 민주당대표 추모씨도 토지 공개념을 이야기한 것이 다 이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듣고 있던 동료가 반문을 한다. “완전 공산주의체제로 간다는 것인데, 국민투표를 통해야 개헌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강론자는, 아무 문제 없다는 자신있는 어조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남북한통합헌법으로 남북한 국민 모두 참여해도 당연히 압도적으로 찬성 통과될 것이고, 남한에서만 실시한다 하여도 찬성표가 훨씬 우세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동료들에게 반문한다. “너희들 같으면 찬성 안 하겠나? 니들 대다수가 전재산 천만 원도 안되는 원룸신세인데, 국가에서 일시에 수억 원의 부동산과 주식을 준다는데, 찬성표 안 던지겠냐고? 국가가 공짜로 팔자를 고쳐 준다는데 싫다는 넘이 있겠냐고? 있는 넘보다 없는 넘이 더 많잖아, 그리고 내것은 안 건드리고, 떼부자들 꺼 빼앗어서 나누어 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있겠냐구?”
나는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이런 주장을 하는 청년에게 따로 물어보고 싶었으나 부질없다 싶어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런 내용은 누구로부터 들은 건지, 아니면 혼자만의 상상인지 궁금했으나. 알면 뭐하겠는가
中國黑龍江省五常縣XX鎭 第2大隊3中隊1小隊 홍길동
중국에서, 요즘도 이런 주소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毛澤東은 1958년 사회주의체제의 완성을 위하여 人民公社를 설립한다.
종전까지 시행하던 토지분배와 배급제도만으로는 완벽한 사회주의에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농업을 중심으로 기업, 공장, 병원, 학교까지 인민공사에 편입시키고 군대조직과 같은 편제로 돌아가게 만든다.
예를 들어 농촌의 大隊급이면, 수백 명이 군대숙소처럼 일자로 지어진 벽돌집에 살면서, 아침기상시간, 식사시간, 농장출근, 학교등교, 등등의 모든 일상을 단체생활로 살아간다.
왕서방은 일년내내 식당에서 만토우(饅頭; 중국식 하얀 밀가루빵)만 반죽하며, 진씨는 종일 채소만 볶고, 조씨아줌마는 유아들만 돌보고, 채씨는 트랙터 운전만 하는 식이다. 黨案(호적과 비슷)에 한 번 올라놓으면, 직업이나, 거주이전등도 자유롭지 못하다.
밥도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으며, 아동들도 모두 똑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는 巨大 兵營이 인민공사이다. 중국의 농촌을 여행하다보면,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뷔페식 백반식당에서, 참 편리한 식사문화다 생각하며, 잘 먹고 나와서, 화창한 가을햇살 아래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기던 중에, 문득 중국인민공사를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젊은 청년 근로자들은 오후 작업시간이 되었는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 서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야! 이대로 가면 정말 그렇게 되는 거 아냐?” 하면서 일터로 돌아가고, 나는 잠시 더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