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더위를 타는 체질이어서, 젊어서 한동안은 냉면 없이는 여름을 나지 못한다 할 정도로 냉면애호가였다. 잘한다고 호가 난 냉면집은 백리길도 머다않고 찾아 다니며 먹었다. 더위가 시작되면 연례행사처럼 을지로 우래옥에 들러서, 면의 풍미와 국물맛, 그리고 가격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가늠해 보기도 했다.
지게질 잘하는 머슴같이 생긴 자가 ‘냉면이 목구멍으로 어쩌구 소리’를 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즈음,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생전 험한 소리 안 듣고 살아왔을 이부회장을 비롯한 재벌가 도련님들이 식체가 걸려서, 그날 이후로 꺽꺽거리며 고생이나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다. 냉면 젓가락을 든 채 눈이 동그래진 이부회장의 모습이 마치 옆에서 본 듯이 제대로 떠오른다.
냉면은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더니만, 본전은 커녕 뺨만 맞고 온 격이다.
아무리 바닥으로 온갖 천대를 다 받으며, 찬밥, 쉰밥, 언밥 얻어 먹으며 살아온 인생이라 할지라도, 밥을 떠서 입에 넣는 중에, “목구멍에 잘 넘어가냐”하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급체가 올 수 있다.
개놈 소놈 허구헌 날 욕만 들으면 살아온 천하 상놈, 잡놈이라 할지라도, 밥먹을 때 저런 소릴들으면, 심한 쇼크와 함께, 그런 말을 한 자의 면상이 꿈에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전사란 자들이, 아무리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과 저들 표현대로 괴뢰들에 대한 이질감으로 沒入되어있다 할 지라도, 손님으로 모셔다 놓고 음식대접을 하면서 저 따위 소리를 해대는 짓은 참으로 拙劣하고 低俗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들은 마상에서 서로 상대의 목을 노리며 決死의 일전을 벌이면서도, 마주 앉아 협상의 술잔을 나눌 때는 예로서 대하였거늘, 이 나라 장수들의 하는 짓은 淺薄하기가 그지없다. 저런 認識을 가진 대상자와 무슨 協商을 하겠다고, 바리바리 짐을 꾸리고, 100억씩이나 들여서 장막을 쳐놓고, 으스대는 적장들을 줄줄이 모셔다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면서 맞이 하는가
외교와 협상의 대표 자격으로 중대업무에 임한 자의 정신 자세와 대인 매너가 저 정도라면, 그런 세력들과 대화의 자리를 이어가서 終局에 무슨 득을 보겠는가.
진정한 사회주의는 옥류관 냉면 주방장과 수고하는 종업원들에게 있다. 이번 발언은 말없이 땀 흘리며 만들어서 내놓는 노동자 대중의 수고와 생산물을 형편없이 모독한 것이니 바로 자아비판감이다. 수고하는 그들 위에 군림하고 앉아서 “이거이 당신들이 환장하고 좋아하는 냉면, 내가 특별히 마음써서 내주는 기가 막히게 맛좋은 냉면이니, 감지덕지 받아 먹고, 요구대로 잘 따라오시오”라고 하는 그런 냉면이라면 앞으로 우리 대표자들은 젓가락도 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유치원 아이들처럼 줄지어 앉아서 냉면그릇 받아 놓고, “눈치없이 먹기는 잘 쳐먹네” 소리를 듣게 하려면 사업하느라 바쁜 사람들 몰고 다니지도 말아야 하는 게 어닌가. 저들 말대로 남북이 함께 평화롭게 발전하고 잘 살아보자고 하는 협상이라면 저런 망발리스트를 협상테이블에 내보내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음식이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내년 여름부터는 평양냉면을 잘 안 먹게 될 거 같다. 아무리 잘하는 집 냉면이라 할지라도, 젓갈로 집어서 입에 한 입 넣을 적에, 그 자의 얼굴과 음성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걸 안 먹으면 죽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먹으면서 그런 해괴한 소리를 떠올리면서 굳이 목구멍에 넘길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냉면 중에 그 품질에 비해서 聲價가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냉면이 진주냉면이다. 고기육수와 해산물육수가 어우러지고, 육전과 계란고명으로 맛을 돋구어서 영양과 풍미가 매우 뛰어하다. 음식사업가들은 앞으로 진주 냉면보급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또 <진주>하면, 강낭콩보다 붉은 절개로 적장을 한숨에 죽여버린 애국여성<논개>가 있지 아니한가. 올 여름에는 논개가 만들고 논개가 즐겨먹던 <진주냉면>으로, 흉악한 외세를 격멸하는 벅찬 애국심까지 滿喫하면서 목안 가득히 시원한 진주냉면 육수를 마시고 싶다.
또, 진주라 천리길, 길이 멀어서 자주 못 먹는다면, 가까운 춘천에 <춘천막국수>가 있다. 춘천역에서 명동을 향해서 걸어 가다보면, 한 귀퉁이에 김진태국회의원의 사무실이 있다. 그를 만나서 환담은 못 나누더라도, 강바람을 맞으며 그가 자주 먹는 춘천막국수를 시켜놓고, 시원한 동치미육수를 들이키면서 나쁜 넘들, 비굴한 넘들의 상판대기의 잔영을 말끔이 씻어내는 맛이 또한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김의원, 기초연금 타면 막국수 먹으러 가리다.”
<논개>와 잘 어울리는 진주냉면, <김진태>를 닮은 춘천막국수, 내년 여름에는 크게 선풍이 일 것으로 기대한다.
목구멍 발언은 크게 잘못한거야, 黨과 人民을 위해서도 큰 過誤를 범한거야. 그리구 <평양냉면>에 대해서도 큰 모욕적 행사를 한거지. 평양냉면은 한양천리길을 올라온 과객들에게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 올리던 조상님들의 情과 사랑이 넘치는 귀한 음식이었거든, 아는가 모르겠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게 있어. <옥류관>에서 저들 냉면의 성가를 추락시킨 피해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도 있다 말이다. 이제라도 싹싹 비는 것이 어떻겠는가? 장군님까지도 고개를 갸웃둥 했다고 그러더라.
글: 신달파 칼럼니스트
사진: 박군자진주냉면 미디어원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