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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 살던 군인이 죽었다. 세월호 사찰 혐의를 받다 투신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이야기다.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있다. 그는 내 사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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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53사단 사단장으로 지휘봉을 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군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53사단 신병교육대대의 훈련 조교가 되었고, 덕분에 사단장으로서 훈련장을 찾던 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내가 전역할 때쯤 그가 육군본부로 인사이동했으니, 사실상 내 군 생활 내내 모셨던 직속상관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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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이재수. 당시 그의 계급이었다. 별 두 개가 달려있는 군인은 사병들에게 마치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헬기를 타고 지나가던 ’스타’의 말 한 마디에 산을 옮겼다고 하는 경험담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흔하디 흔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에 한 번도 공감해본 적이 없다. 군 시절 동안 내가 봐왔던 ‘투스타’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말 한 마디로 산을 옮기는 ‘신’과 같은 존재라기보다는, 훈련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교관 조교들의 행군길에 함께 나서며 신병들에게 안부를 묻곤하던 ‘리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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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주 훈련장을 찾았다. 사단장이 온다고 부대가 청소하느라 뒤집어지지 않도록 별다른 언질도 없이 훈련장을 찾아 종종 대대장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신병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 한 명 한 명이 군인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도록 확실히 훈련하라고 지시하곤 했다. 그래서 궂은 날씨여도 대충 훈련할 수가 없었다. 또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적극 개입했다. 교관이나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정해진 수위 이상의 얼차려를 주거나, 말년병장이 휴대폰을 몰래 반입해오는 등 군생활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 발각되는 순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차에 따라 징계로 이어지곤 했다. 장교든 부사관이든, 사병이든 훈련병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 중대의 교관도, 내 선임병과 후임병도 종종 징계를 받곤했다. 전역하고 나서 다른 부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징계라는 게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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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사단장은 엄격했던 만큼, 군 부대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신병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고, 열심히 복무하는 기간장병들에게 포상을 아끼지 않았다. 직접 훈련장을 찾고, 부대를 방문해서 문제를 찾아내고, 개입하고, 뜯어고쳤다. 그는 단순히 지시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필드로 나가 이끄는 ‘리더’였다. 참군인의 표상이다 싶을 정도로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의 그였지만, 늘 번쩍번쩍 광이 나야 할 ‘투스타’의 전투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흙먼지를 뒤집어쓰곤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직업 군인이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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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사단장은 장병들 앞에서 훈화를 하며 늘 명예를 강조했다. 훈련소를 졸업하고 이제 막 이등병이 된 젊은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라고 했다. 군인은 명예로 산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말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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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그는 분명 명예를 위해 살아간 군인이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다는 명예. 군인들은 부나 권력이 아니라 그런 명예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그런 군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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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유가족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다고 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무사령부는 정보기관이다.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세월호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이 터졌을 때 기무부대원들은 당연히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했을 것이다. 국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중차대한 일들의 동향을 지켜보고 정리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니까.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아젠다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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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그들을 ‘적폐’로 낙인찍었다. 각종 의혹들을 제시하며 어떻게든 그들을 짓밟고자 괴롭혔다.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민망한 과장까지 해가며 선동을 한 이유다. 기무사 뿐만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공공을 위해 헌신하던 모든 이들을 마치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일하는 부역자 취급했다. 수많은 군인들이, 그리고 공무원들이 박근혜 정부 때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의혹에 시달리고, 수사당했다. 이런 공포정치 때문에 지금 군인과 공무원들이 정권이 또 바뀌면 적폐로 몰릴까 두려워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려 한다는 하소연들이 언론을 통해 종종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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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은 ‘대중의 분노’를 국정동력으로 삼는 저열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자꾸 ‘공공의 적’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내 편 네 편을 갈라 모든 것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충성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적으로 몰고있다. ‘정치적 편’을 들지 않으려는 군인들과 공무원들은 자연스레 진영논리의 1순위 희생양이다. 편을 들지 않았기에 편이 없고, 적 취급을 당하니까. 그렇게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검찰에 끌려가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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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그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심심하면 갖다붙이는 ‘직권남용’이라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법원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검찰은 구속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피의자 이재수 전 사령관에게 수갑을 채워 데리고 다녔다. 영장심사를 받으러 가는데 굳이 수갑을 채워 언론 앞에 세웠다. 그렇게 이재수 전 사령관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법원으로 향했다. 언론을 통해 나온 법조인들의 말에 따르면 흉악범이 아닌 이상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수갑을 차고 법원을 향하는 이재수 전 사령관에게 쏟아진 플래시 세례는 그가 군인으로서 가슴에 품고 살던 명예를 난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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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명예로 살던 군인 이재수. 성인이 되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군인으로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정치세력의 부역자라도 된 듯 죄인 취급 받으며 법원으로 향하던 날, 그는 군인으로서 사실상 사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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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서에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고 말했다.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정치상황에 얽혀 제대로 된 말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이 일로 어려운 지경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본인이 모든 것을 다 안고 가겠으니 부하들은 건들지 말라고 부탁했다. 죽음을 앞두고도 군을 걱정하던 그의 마음을 읽으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명예를 위해 살다, 명예가 꺾여 죽음을 택한 군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던 그의 마지막 말의 무게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짓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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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살해극이다. 정권이 바뀐 나라가, 정치논리로 한 군인을, 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왔던 군인이, 정권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다. 광장으로 끌려가 모욕을 받고, 망신을 당하고, 돌을 맞았다. 적폐청산 운운하며 이런 증오의 정치를 계속하는 문재인 정권을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가 끓어오른다. 이런 증오의 정치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나? 당신들의 무능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를 돌리기 위해 만들어내는 희생양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마녀들이 불타죽게될까. 문재인 정권은 이런 장난질이 정말 계속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가? 당신들의 무능과 부패와 거짓에 대한 분노가 광장을 뒤덮을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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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이재수의 죽음을 기린다. 죽음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그의 명예를 기억한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던 그의 삶을 추모한다. 사단장님, 정치 따위는 없는 곳에서 이제 편히 쉬십시오. 충성.
우 원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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