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실, 조선 유일 여성실학자 다룬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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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공에 기대선 여자 표지 제공;풍석문화재단

(미디어원=김인철기자) 임원경제지 등 풍석 서유구 선생이 남긴 저술의 번역과 출판 및 기념관 건립 등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는 풍석문화재단 부설 출판사 자연경실에서는 2019년 1월 서유구 선생의 형수이자 조선 유일의 여성실학자인 빙허각 이씨의 생애와 업적, 사랑과 비애를 드라마틱하게 그린 소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곽미경 저)을 펴냈다.

소설은 출간된 지 2주만에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와 영풍 등 주요 서점에서 역사소설 베스트에 오르는 등 뜨거운 호평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래는 소설 출간 후 진행된 서평 이벤트를 통해 드러난 독자의 반응 중 일부이다.

“빙허각의 일생을 담은 최초의 역사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책” – 독자 까꿍메리
“같은 여자로서 자신의 길을 똑바로 직시하고 나아가는 모습이 감동이었고… 뿌듯하면서도 조금은 안타깝고…또 감동하면서 읽었다” – 독자 coly0102
“가히 지난 십년간 읽은 소설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글자 하나라도 놓칠까 천천히 읽게되는 따뜻한 책이다” – 독자 0127violet
“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똑 부러진 소녀와 스스로 농사를 짓는 양반집 도련님의 만남에 아직 두 사람의 순수함이 함께 어우러져 너무 귀여웠다” – 독자 maillima
“여자로서 누군가에 기대어 사는 것보다는 자주적인 삶을 살았던 빙허각…멋지고 똑똑한 그녀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 독자 새임

빙허각은 1759년 평양감사를 지낸 명문 전주 이씨 집안 이창수의 딸로 태어났다.
이 해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저술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것으로 널리 알려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이 아이는 어린시절부터 총명하기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젖니를 갈 무렵에는 자신의 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게 갈린다고 스스로 이빨을 뽑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당찼다.
아이의 아버지 이창수는 당대의 뛰어난 학자로 슬기로운 딸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학문을 지도하였다.
이 아이는 나이 열한 살 때 빙허각(憑虛閣)이라고 자신의 호를 스스로 정한다.
빙허각은 기댈 빙憑, 허공 허憑, 집 각憑으로 직역하면 ‘허공에 기대선 여자’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개척하겠다는 의미이다.

빙허각은 열 다섯 될 때, 그 당시 최고의 학자 집안이었던 달성 서씨 집안의 서유본과 혼인한다.
서유본의 할아버지이자 규장각의 창시자이고 세손 정조의 스승이었던 조선의 대학자 서명응은 손녀 며느리의 학문적 성취에 크게 탄복하였고, 그 성취를 아깝게 여겨 자신의 아들 서형수와 학문적 제자인 유금을 통해 서유본, 서유규, 서유긍 등 손자들과 함께 손자 며느리인 빙허각에게 학문을 지도하게 한다.
빙허각은 훗날 임원경제지를 남긴 대학자 서유구를 포함하여 자신의 남편인 서유본, 서유긍 등 또래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배우는 어린 소년소녀의 무리들 중에서도 지도적 역할을 한다.

빙허각이 살던 시대는 세계적으로 백과사전 편찬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통치자를 위한 학문에서 일상 생활을 위한 보편의 학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보인 서씨 집안과 여성으로서 학문적 절정에 도달했던 빙허각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민감하고 보았고, 백성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의 지식, 즉 백과사전의 편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 결과 빙허각은 한글로 된 최초의 여성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집필하였다.
<규합총서>는 식생활, 의생활, 농사, 태교와 아기 기르는 법, 거처를 정갈하게 하는 법 등과 같은 그 당시 여성의 책임으로 된 생활 전반으로 다루고 있다.
<규합총서>는 무엇보다도 한글로 쓰여져, 한문을 잘 모르던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규합총서>외에도 빙허각은 <청규박물지>와 <빙허각시선> 등 문학적 성취도 남기고 있다.

빙허각의 업적도 참으로 놀랍지만, 빙허각의 생애는 더 놀랍고 더 뜨겁다. 빙허각과 남편 서유본과의 사랑과 지우는 그 어떤 러브스토리에도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절하고 뜨겁다.
빙허각은 직접 길쌈을 하여 남편의 옷을 만들고 백화주를 담궈 남편과 시를 나누고, 남편 서유본은 평생에 걸쳐 벼슬을 스스로 포기하고 빙허각의 학문적 성취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빙허각의 학문적 성취는 불행하게도 수많은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 속에서 이뤄진다.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 앞에 슬픔을 견디지 못한 빙허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그 때마다 남편 서유본의 사랑이 그녀를 살려낸다.
빙허각의 마지막은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비극적이다.
남편의 죽음 앞에 어린 시절 남편과 약속했던 한 날 한 시에 묻히고자 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절명사라는 절대적 지우였던 남편을 기리는 시를 남기고 죽어간다.
소설 속에서도 표현되지만 빙허각의 죽음은 스스로의 슬픔이기도 하고 지우에 대한 절대적 의리의 표현이었다.

빙허각 이씨에 대한 기록은 시동생이었던 서유본이 빙허각의 죽음 이후 남긴 묘지명 ‘수씨단인이씨묘지명(嫂氏端人李氏墓誌銘)’에 남아 있다.

소설은 빙허각 외에도 서얼 출신의 실학자 유금(1741~1788)이나, 청나라 황실에서까지 천문학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초빙하였지만 끝내 비운의 길을 걸어갔던 천재 과학자 김영(1749~1817), 빙허각의 조카이자 골동품에 미쳤던 이조묵(1792~1840)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다양한 씨줄과 날줄로 빙허각의 운명과 교차하여 등장한다.

<조선셰프 서유구>를 통해 역사소설에 발을 딛기 시작한 작가 곽미경은 “주인공인 빙허각이라는 여인도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지만, 그녀의 주변 인물들도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시간적으로 아득히 오래되어 우리 시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현대의 많은 것들이 그 뿌리를 이 시대에 두고 있다.
잊혀진 시대의 정서나 지혜, 살아가는 모습을 소설을 통해 담고 싶었다.
소설을 통해 내가 우리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받았던 그리운 것들의 끝자락을 우리의 아이 세대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 겨울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빙허각이라는 한 여인의 삶과 성취, 사랑과 비애가 독자들의 가슴을 얼마나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지, 그 처절함 속 강인함으로부터 독자들은 또 한 해를 살아가는 힘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 지. 소설은 나왔고 남은 것은 독자들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