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을 끝낸 그도
아직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하며
시 한 수 읊을까?
김삿갓묘로 가는 길 왼편으로는 펜션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습니다. 오른편은 김삿갓계곡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김삿갓묘 4㎞ 전쯤에서 김삿갓주막을 찾았습니다. 환영하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주막을 지키는 돌돌이가 마구 짖어댑니다.
이 주막은 마을(와석리)에서 운영합니다. 영월군청에서 꽤 공들여 만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국제 포럼이나 ‘동강축제’ 같은 행사가 영월에서 열리면 떡메치기 등의 외국인 체험행사가 이곳에서 열립니다.
유공주(兪公主․38)씨는 이 주막의 실질적인 주인입니다. 아니, 젊은 주모(酒母)입니다. 모든 음식을 혼자 준비하고 만들어내고 내오고 배웅까지 합니다. 유씨는 이곳 토박이입니다.
김삿갓주막은 지난해 3월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메뉴는 단출합니다. 곤드레나물밥(7000원)과 메밀부추전(1만원), 오리훈제산채전골(4만원), 민물매운탕(4만원)이 전부입니다. 옥수수가 유명한 강원도이니 술은 옥수수막걸리(5000원)가 준비돼 있습니다.
이 주막은 한겨울(12~2월)엔 영업하지 않습니다. “왜요?”라고 물으려다가 꽁꽁 얼은 계곡물을 떠올리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평일보단 주말에 손님이 많고, 낮 시간엔 박물관 체험학습 온 학생들의 점심식사도 책임집니다. 그러나 곧 다가올 휴가철엔 평일․주말, 낮밤 구분 없이 손님들로 꽉 찹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손님이 없을 때까지입니다.
주막은 30평짜리 한 동과 10평짜리 한 동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30평짜리 한 동엔 주방시설이 있고, 민박을 할 수 있는 방(1박 5만원)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막걸리 한 잔 한다면 방보다는 바깥 평상에서 마셔보길 권합니다. 주막 뒤편으로는 태백산 끝자락이, 앞쪽에는 소백산 끝자락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김삿갓계곡의 계곡물 소리까지 들리니 시 한 수 절로 읊고 싶어집니다.
멈춘 듯싶던 비가 보슬보슬, 주룩주룩 다시 내립니다. 사진촬영을 핑계로 부추전과 옥수수막걸리를 부탁했습니다. 비 내리는 날, 이만큼 입을 즐겁게 할 먹거리가 또 있을까요.
유공주씨가 전골도 먹고 가라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허나, 과감히 뿌리칩니다. 객(客)은 객일 뿐, 얻어먹는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애써 자위해 봅니다.
전국을 뒤져봐도 주막처럼 차려놓은 술집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주막을 보곤 그저 옛 주막을 흉내 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허나, 이런 주막이 있기 때문에 한두 세대를 건넌 후세들이 한국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닌 여전히 한 시대를 같이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고맙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