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할머니 손맛 담긴 구수한 두부요리

오산 손두부전골
윷놀이 날 먹던 잔치음식 경기도 오산 손두부전골

오산은 고려시대 수원부에 속해 있을 때부터 도성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막아내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권율 장군이 이곳에서 대치했는데, 왜군은 조선인들이 물이 없는 벌거숭이 산(禿山)인 오산 독산성에서 대항하는 것을 보고 물을 부으며 이를 조롱했다. 이에 권율 장군은 물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단다. 말을 씻길 정도라면 포위된 산성 안에 물이 넘쳐난다는 증거. 이를 보고 왜적은 함부로 성을 공격하지 못한 채 물러났고, 이를 기려 이곳에 세마대(洗馬臺)를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난리가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졸들도 있었지만 오산에 남아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이 모이면 즐겼던 놀이가 바로 윷놀이(척사). 지금도 해마다 척사대회가 열릴 정도로 윷놀이는 오산사람들의 인기 오락거리였다. 척사대회가 열리는 잔칫날이 다가오면 오산 아낙들은 콩죽을 쑤어 태안에서 가져온 소금 가마니에서 흘러내린 간수를 붓고 두부가 굳기를 기다렸다. 잔칫날, 멍석 깔고 윷 던지는 남정네들 옆에서 국밥 말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함께 등장했던 것이 바로 이 두부를 이용한 두부전골이었다. 부침개 부치듯 솥뚜껑을 뒤집어 두부와 야채를 올리고 국밥용 고기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데워냈다. 이와 더불어 즐겨 먹었던 것이 두부보다 맛있다는 두부 우거지. 이것은 두부를 굳힐 때 온도 차이로 인해 겉에 생긴 얇은 막, 즉 두부의 피부다. 말캉한 두부의 느낌과는 다르게 쫄깃해서 두부 만드는 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별미였다고. 지금도 옛날 두부전골의 맛을 이어오고 있는 오산의 손두부집에서는 단골손님이 오면 전골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부 우거지를 대접해 귀한 마음을 전한다.
강릉부사의 충심이 담긴 맛 강원도 강릉 초당순두부
<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조정에 충정어린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어 강릉부사로 내려왔다. 그는 나라 걱정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근심도 달래고 머리도 식힐 겸 관청 뜰에 있는 우물물을 떠다 마시곤 했는데, 그 물맛이 너무나 좋아 이것으로 두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부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음식이었고, 맛있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물이 좋아야 했기 때문이다. 허엽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정성을 다해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우물물을 떠다가 밤새 콩을 불리고, 불린 콩을 조심스레 맷돌로 갈아 촘촘한 천으로 걸러 콩물만 빼냈다. 그런 다음 콩물을 가마솥에 붓고 끓였는데, 이때 장작불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지 않으면 애써 만든 콩물을 버리기 일쑤였기에 특히 신경을 썼다. 끓인 콩물을 응고시키려면 간수를 넣어야 했지만 강릉에는 천일염이 나지 않아 깨끗한 동해 바닷물을 길어다 썼다. 허엽은 이처럼 두부 만들기에 정성을 쏟으며 조정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이렇게 허엽이 마음을 다스리려고 만든 두부는 맛이 무척 담백하고 고소했다. 강릉 관청 주변에서는 부사가 손수 만든 두부가 맛있다는 소문이 났고, 그 뒤로 강릉사람들은 허엽의 호인 ‘초당’을 붙여 ‘초당두부’라고 불렀다. 이후 초당두부 제조법은 알음알음으로만 전해 내려오다가, 100여년 전부터 몇몇 집에서 이 전통 방식 그대로 두부를 만들어 강릉 시내에 가져다 팔기 시작하며 다시 입소문을 탔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허엽이 처음 두부를 만든 초당마을에 초당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전문음식점이 두세 곳이 생겨나 인기를 끌자, 그 일대로 두부요리 전문점이 20여 곳 이상 문을 열어 초당마을은 ‘두부마을’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