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년 오뚝이입니다 .
서울 사람들이 말하는 시골출신이고 , 기술을 배워 자립하겠다고 기계공고를 다녔었고 , 그리고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내 인생을 위하여 의지를 갖고 대학에 진학 했었습니다 .
다니는 동안 학비는 스스로 벌었어야 했고 , 거기에 더하여 장남으로 태어난 까닭으로 동생들 학비를 추가로 벌어야 했습니다 .
학생이었지만 공부시간 보다는 일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 일에 지쳐 잠을 자면 베개에 코피가 흥건히 젖기도 했었지만 , 못 먹어서 얼굴에 버짐이 핀 여동생을 볼 때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은 다행히 내게 건강한 육신을 물려 주셔서 나는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 대학축제 한 번을 참가하지 못하였고 , 심지어 재학 중 군복무 기간이 내게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
훈련이 고되다 해도 , 내가 해온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며 , 자동으로 먹여 주었고 , 구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기위해 발광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
그러다 전역을 하고 다시 고뇌의 시절을 맞이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들은 정말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
공부 ! 공부 하고 싶었습니다 .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
줄줄이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 . 그리하여 나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습성에 베어 지금도 퇴근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
나는 막노동 프리랜서 ( 멀티 엔지니어 ) 입니다 . 어떤 분들은 나를 슈퍼바이저라고도 하더군요 . 자격도 면허도 많지요 .
회사나 조직은 망해도 나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살아보니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였습니다 .
잘 하는 것도 있으니 나는 분명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할 것이며 , 굶주리고 고달프고 포기하고 싶은 때가 간혹 오기는 하겠지만 , 사력을 다해 목표를 향해 간다면 그것은 잠시의 추억으로 기억 될 뿐입니다 .
나는 영원한 오뚝이 청년입니다 .
당신은 막노동 프리랜서 ! 멀티 엔지니어 ! 슈퍼바이저 !
누구나 어려움을 겪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
– 오늘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