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우뿌우 기적을 울리며 뭉클뭉클 연기를 뿜어내던 증기기관차, 참방참방 발장구치던 강가의 추억, 별 쏟아지는 통일호에서의 하룻밤. 그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섬진강 기차마을로 달렸다.
달려라, 증기기관차의 추억
마을 전체가 기차를 테마로 하고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은 옛 곡성역에서 시작된다. 현재의 곡성역사에서는 도보로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10년 세월을 거스른 듯 정겹기만 하다.
통일호와 비둘기호의 승차권을 팔던 곳은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의 매표소로 변신했다. 표를 끊고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녹슨 기찻길과 육중한 몸매의 증기기관차가 반긴다.
선로 건너편으로는 동물농장과 천적곤충관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박한 규모지만, 먹이도 주고 사진도 찍어가면서 좀 더 가깝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어 예상보다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된다.
동물농장 반대편에는 이국적인 모습의 작은 풍차가 서 있고 그 사이로 미니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아직은 꽃이 얼굴을 내밀지 않았지만, 한 달만 기다리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레일 주변을 소담스럽게 채운단다.
그럼에도 섬진강 기차마을의 백미는 단연 증기기관차다. 옛 곡성역과 가정역 사이를 오가는 관광 전용 열차로 객차가 3량이고 앞뒤로 기관차가 연결된 형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석탄을 때는 진짜 증기기관차가 아니라 디젤 방식으로 움직이는 ‘증기형’ 기관차라는 사실. 물론 시커먼 석탄 연기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그저 구름처럼 하얀 연기만 사뿐히 하늘로 피어오를 뿐이다.
옛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는 약 10km. 열차는 고작해야 시속 25~30km의 속력을 내며 30분간 섬진강과 옛 전라선을 따라 달린다. 굽이도는 강줄기를 닮은 기찻길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낭만적이지만, 붉은빛 철쭉 옷을 두르는 4~5월에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기차 내부는 1960년대까지 실제 우리나라에서 운행됐던 증기기관차 모습 그대로다. 뿌연 창문, 빛바랜 딱딱한 의자, 그리고 오래된 선풍기까지. 가끔 엉덩이가 울리는 아픔이 느껴져도 부모님의 오래된 앨범을 훔쳐보는 듯 재미나기만 하다.
느릿느릿 낡은 선로를 따라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섬진강의 허리를 잡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하며 가정역의 품에 안긴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춘 기차는 30분을 쉬었다 옛 곡성역으로 되돌아간다. 운행횟수는 하루 세 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기간에도 오전과 오후 각각 1회씩만 늘어나 총 5회를 넘지 않으니, 미리 예약하는 편이 안전하다.
기차를 놓치다, 그리움을 만나다
되돌아가는 기차에 꼭 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아니 타야 마땅하지만 어쩐지 서두르고 싶지 않다면 가정역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다.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가정역 일대에는 섬진강 출렁다리, 천문대, 자전거 대여소, 청소년 야영장, 기차 펜션 등이 있다.
올 초 새롭게 선보인 섬진강 출렁다리는 2010년 집중호우로 두가교가 유실됨에 따라 다시 만들어진 도보전용 다리다. 길이 200m, 폭 3m의 현수교 형태로 다리 중간마다 조망창이 설치돼 유유자적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기에 좋다.
다리를 건너면 천문대와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이어진다. 특히 섬진강변을 따라 조성된 3.2km 자전거 길이 매혹적인데, 섬진강과 철로를 나란히 두고 페달을 밟는 기분이 그야말로 끝내준다. 자전거는 가정역 주변 매점과 청소년 야영장에서 빌릴 수 있다.
기차도 자전거도 좋지만, 더 느리고 한결 여유로운 낭만을 찾는다면 레일바이크가 제격이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정역으로 가다 보면 도중에 침곡역이라는 작은 역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섬진강 레일바이크가 출발한다.
레일바이크는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5.1km를 30~40분간 달리게 되는데, 증기기관차에서 본 풍경을 훨씬 느리게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녹슨 기찻길을 온몸으로 느끼며 슬렁슬렁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새 가정역에 도착한다. 막판 오르막 구간이 살짝 힘에 부치긴 하지만 느릴수록 많이 담기는 풍경에 그마저도 즐겁다.
낭만 기차여행의 마지막 코스로는 기차 펜션이 제격이다. 옛 통일호 객차를 고쳐 만든 기차 펜션은 녹슬고 벗겨진 외관과 달리 깔끔하고 쾌적한 내부 시설이 돋보인다. 게다가 섬진강 줄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절묘하게 위치해 있어 머무르는 내내 눈이 호사롭다.
오일장, 마지막 아쉬움을 부탁해
무심한 듯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그리웠던 까닭일까. 기차마을을 벗어나 곡성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오일장(3, 8일)이 서는 날. 마침 기차 시간도 좀 남았겠다, 곡성역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높은 천장의 현대식 건물에 들어선 곡성 오일장은 2009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보통 ‘오일장’하면 들쑥날쑥 즐비한 노점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라 세련된 첫인상에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겉모습은 그저 겉모습일 뿐, 골목골목 새어나오는 그곳의 이야기는 여전히 푸근하고, 또 다정하기만 하다.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는 대장간,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뻥튀기, 손으로 만든 못생긴 두부, 그리고 온갖 나물과 씨앗이 지천으로 널려 정겨움을 겨룬다.
예약 및 문의
섬진강기차마을 061-362-7461 www.gstrain.co.kr(인터넷 예약은 하루 전까지 가능)
코레일관광개발 곡성지사 061-363-9900
섬진강 레일바이크(침곡역 출발) 061-362-7717
기차 펜션 061-362-5600 www.gspension.co.kr
글 사진: 박은경 기자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본 기사의 copyright는 한국관광공사에 있으며 관광공사의 정책상 무단전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