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의 아프리카에서 살아가기) 1화. 남아프리카 공화국 개관

[남아프리카=이수인] 1화. 남아프리카 공화국 개관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과연 이 곳은 어떤 곳일까요?
아프리카 대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지막 남은 거대시장’이란 닉네임으로 세계 경제 속의 위치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남은 거대시장’ 속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시장의 교두보’라는 한마디로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어떤 이유로?

우리에게 알려진 아프리카는 내전과, 기아, 동물, 척박한 사막 등으로 흔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민을 결심하고, 나라선정이 끝난 후 떠날 시기를 생각하며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할 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매주 부모님을 뵈면서 입안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민을 가도 된다, 당장 가도 된다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나라에 대하여 알아보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었을 당시에도 사실 저희 부부는 이미 남아공이 확정적 이였었거든요.
최종적으로 남아공에 간다고 말씀드릴 때, 전 정말 저희 아버님 쓰러지시는 줄 알았습니다.
“뭐! 아프리카를 간다고?”
이민을 하면서 당시에는 생소한 나라이름과 전무한 정보를 가지고 어디 가서 이민 간다고 말도 못하고 혼자 묵묵히 이민준비를 1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떠난 이민 후 8개월이 되던 즈음 해서 부모님께서 저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오셨습니다.

학교와 생활 등을 보신 아버님… 가장 반대가 많았고, 쓰러지실 뻔 하기까지 하셨던 저희 아버님은 “여기가 미국보다 낫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거대 시장’, ‘아프리카의 교두보’, ‘미국보다 낫다’…

남아공을 방문하신 모든 분들은 한결 같이 좋은 말씀을 하십니다. 방문 전에 생각하셨던 아프리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는 모두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아프리카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이야기로 남아공에 대한 개관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Republic of South Africa

면적

1 219 090 km2(세계 25위)

대한민국의 12배에 달하는 국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

48,810,427

세계 인구수로 한국이 25위, 남아공이 26위로 비슷한 인구수 입니다.

(인구수는 비슷한데 우리보다 12배나 넓은 곳에 살고 있다 쉽게 보실 수 있죠.)

언어

영어, 아프리칸스어, 은데벨레어, 코사어, 줄루어, 페디어, 소토어, 츠와나어, 스와지어, 벤다어, 총가어 (공식언어는 11개로 각 부족의 언어를 쓰지만, 체감하는 언어는 영어입니다. 전통문화계승을 위해 각 부족언어와 문화에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도

행정 수도: 프레토리아 (Pretoria)

사법 수도: 블룸폰테인 (Bloemfontein)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 (Cape Town)

기후

아열대성, 지중해성 기후

역사

아프리카 대륙 남단부를 차지하는 나라로 인도양과 대서양 두 개의 대양을 끼고 있는 나라입니다 .

15 세기 바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유럽의 식민지 건설 붐으로 발견되어 17 세기 네덜란드인의 동인도회사의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프랑스 위그노와 영국의 진출을 할 정도로 유럽의 식민지 붐에 중요 기지를 맡았습니다 .

많은 유럽인들이 진출한 만큼 노예제도 , 인종차별로 유명한데 1910 년 남아프리카 연방이 세워진 후 , 아프리칸스어로 ‘ 분리 , 격리 ‘ 를 뜻하는 극단적인 인종 차별법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던 당시의 남아공은 1950 년 한국전쟁에 공군을 보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잘 살던 나라였습니다 .

그러나 인종차별로 인해 남아공내의 선각자들과 국제 무대에서의 경제제재로 이후

경제는 어려워지고 급기야 1991 년 토지법과 집단지역법 , 인구등록법을 포함한 다른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차별법을 폐지하면서 1993 년 UN 의 제재를 해제할 수 있었습니다 .

1994 년 유명한 넬슨 만델라의 대통령 당선은 그 동안 백인정부로 유지되던 남아공에 마지막 백인 대통령으로 알려진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민주화 역사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

1993 년 넬슨 만델라의 노벨평화상은 사실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와의 공동수상인 만큼 평화롭게 이루어진 민주화로 볼 수 있습니다 .

인종차별로 국제적 제재를 받던 남아공의 경제는 이후 국제무대에 다시 나설 수 있게 되면서 지금은 G20, G7 에서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옵져버 자격으로 국제적 위상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흔히 아는 BRICS 의 S 가 South Africa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남아공입니다 .

제가 나름대로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한국인이기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알고 있기에 불편함없이 살지만 , 해외에서는 생소한 그 나라의 역사 문화는 머리로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 곳에서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1994 년 흑인 첫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당선 이후 단 20 년이 지났습니다 . 법으로는 해제되었지만 , 실상은 아직도 잔재되어 있는 지역구분 그 지역구분으로 야기되는 교육수준과 생활 …
이 간략한 역사 배경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