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술, 그리고 잡담

White and Red Wine, Photo By Jungchan Lee Ⓒ JC Lee

고전적 술 그리고 잡담
고문헌의 전설이나 신화를 통해서 우리는 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 만큼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게 되고 종국에는 인간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술을 마시게 되니 이런 광경은 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술 좋아하기로는 대한국민이 세계에서 손꼽힌다. 민초들의 힘들고 팍팍한 삶을 한 잔의 쓴 소주와 텁텁한 막걸리로 잊을 수 있으니 후에 남이 좀 나무란들 어떠랴. 술 한잔에 영웅호걸이 된 듯 천하를 논할 수도 있으니 대한국민이 술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술을 잘 못 마신다면 그저 술자리 한켠에서 게슴츠레 한 눈으로 지켜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은 일이다.
술과 관련한 잡담을 나누며 잠시나마 복잡한 세상을 잊어 보는 건 어떤가? 이야기를 풀어 놓자니 목 마를까 걱정이 된다. 술 한동이 팔러 가야 겠구나…
◆ 술 두병
영국의 한 신사가 아들을 데리고 술집에 가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
“ 얘야 , 술이라는 것은 즐길만한 것이지만 도를 넘으면 안 되지 . 저쪽 테이블의 신사를 좀 봐라 , 토마토 같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숨이 차 있지 않니 . 저렇게 되면 여기 있는 술 두병이 네 병으로 보이지 .”
그리고 아들이 말했다 .
“ 아버지 , 지금 이 테이블에는 술이 한 병밖에 없는데요 .”

◆ 늦도록 마시는 이유
자정이 지나 제 1 의 취객이 , “ 여보시오 , 이렇게 늦도록 술을 마시고 다니면 부인한테 혼나지 않소 ” 하고 물었다 .
제 2 의 취객이 “ 내겐 그런 걱정이 없소 , 나는 아내 같은 귀찮은 존재는 가지고 있지 않소 ” 라고 대답했다 .
제 1 의 취객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 아내가 없다면서 당신이 밤늦도록 싸질러 다니는 이유가 뭐요 .”

◆ 주정꾼 父子
아버지가 아들에게 “ 인마 네놈의 머리는 둘이로구나 , 네까짓 것 한테는 이 집을 물려줄 수 없어 ” 하고 호통을 쳤다 .
아들 역시 어지간히 취했던지 ,
“ 물려받지 않을 거예요 . 이렇게 빙글빙글 도는 집을 어디다 쓰겠어요 .” 했다 .

◆ 수술 후엔
어려운 수술을 마친 의사가 환자에게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
“3 개월간은 금주 , 금연 ,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시오 …… .”
“ 그럼 섹스는 어떡하죠 ?”
“ 그것도 조심해야지요 , 절대로 흥분해서는 못씁니다 . 그러니 상대는 부인으로 한정하세요 .”

◆ 질이 다르다
“ 여보게 , 자넨 결혼하고 나서도 여전히 마시네 그려 .”
“ 음 결혼 전엔 즐거워 마셨고 , 지금은 홧김에 …… .”

◆ 시음회
포도주 품평회를 하는데 , 이것저것 마셔보며 기분이 알딸딸해질 무렵 누구도 특징을 가릴 수 없는 것이 나왔다 .
그래서 술의 도사한테 그것을 가지고 갔다 . 그는 냄새를 맡고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
“ 맛도 아무 것도 없군 . 자네 마누라와 키스한 것 같아 .”
◆ 돈 내고 술 먹기
어떤 양주가 술 한 동이를 지고 장터로 팔러가는 길이었다 .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술을 좋아해서 서로 굳게 약속하기를 부부지만 술은 절대로 공짜로나 외상으로 먹지 않기로 했다 . 고개를 넘다가 숨이 차서 영감이 지게를 내려놓고 쉬게 되었다 .

영감은 목이 몹시 컬컬하여 정말 못 견딜 지경이었다 . 술 한 모금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마누라와 약속한바가 있는지라 섣부르게 먹자는 소리를 못했다 .

가만히 주머니를 만져보니 엽전 한 닢이 들어 있었다 . ‘ 옳지 됐다 ’ 하고는 마누라에게 “ 여보 , 돈만 내면 나도 이 술을 먹을 수 있겠다 .” “ 그야 돈만 낸다면야 .” 영감이 엽전을 꺼내 놓으며 “ 자 이걸로 두 잔만 먹자 .” 하고는 조그만 바가지로 두 잔을 퍼먹었다 .

마누라가 보니 역시 참 견딜 수 없다 . 그래서 영감더러 “ 나도 돈만 내면 먹을 수 있겠지요 ?” “ 아무렴 먹을 수 있다마다 .” 마누가라 금방 영감한테 받은 엽전 한 닢을 쥐어주며 , “ 자 나도 두 잔만 먹겠소 .” 하고서 퍼먹었다 . 마누라가 두 잔째를 다 들이키고 나니까 , 영감이 그 돈을 다시 마누라에게 주고 “ 두 잔만 더 먹어야지 ” 하고 다시 술을 퍼먹었다 . 이렇게 해서 술 한 동이를 다 먹어 버렸는데 , 맨 나중에 엽전은 영감 주머니로 도로 들어갔다 .

◆ 꿈속의 술
술을 좋아하는 한 사나이가 꿈에 좋은 술이 생겼다 . 그것을 따끈히 데워서 막 마시려고 할 때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 그 사나이는 “ 아깝다 , 그냥 찬대로 마실걸 .” 하고 아쉬워했다 .

◆ 술 먹는 사람이 대머리인 이유
공선생이란 자는 술을 몹시 좋아하였다 . 그는 대머리인데 턱의 수염이 길어서 덥석 부리였다 . 어떤 객이 공선생에게 농담을 걸었다 . “ 몸체는 하나인데 그대는 어이하여 턱에는 털 ( 수염 ) 이 나고 머리에는 털이 없는고 ?” “ 술 때문이야 !” “ 술이 머리에는 화를 입히고 턱에는 화를 입히지 않는가 ?” “ 하 ! 이 사람아 자넨 못 들었는가 . 술 취한 사람이 ‘ 아이고 머리야 ’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지 ‘ 아이고 턱이야 ’ 하던가 . 아픈 것은 화를 입는 것이요 , 아프지 않는 것은 화를 입지 않는 것이니 , 나의 턱엔 털이 나고 머리엔 털이 안 난 이유를 이제는 알겠나 .”

◆ 허가 취소
높은 분이 절에 와서 중에게 물었다 .
“ 비린 것을 먹느냐 ?” “ 별로 안 먹지만 술을 마실 때는 좀 들지요 .”
“ 그럼 너는 술을 마시는 게로구나 .” “ 아뇨 , 별로 많이 마시진 않아요 . 그저 장인이 오실 때 몇 잔 같이 들 뿐인 걸요 .”
높은 분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 “ 그럼 너는 마누라까지 두었다는 말이냐 . 이건 중의 신분을 망각해도 분수가 있지 . 내 당장 종무과에 말해서 네 도첩 ( 度牒 : 중에게 발급하는 신분증명
서 ) 을 빼앗아 버리리라 .” 중이 말했다 . “ 뭘 감추겠읍니까 ! 저는 지난해에도 도적질을 하여 이미 도첩을 빼앗겼습니다 .” ( 이글을 편한 사람은 이 파계승이 그래도 다른 중들 보다 정직하다고 칭찬했다 .)

◆ 쇠고집
고집쟁이 부자 ( 父子 ) 가 살고 있었는데 어찌나 고집이 센지 한번 우기기 시작하면 도무지 양보를 하려들지 않았다 . 어느 날 , 손님이 와서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손님과 술을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 아들에게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 그런데 술을 사가지고 오는 외진 길에서 한 사나이를 만났다 . 그 사내 역시 고집쟁이여서 도무지 아들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지라 두 사람은 서로 마주서서 눈을 흘기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이 언제까지나 서 있었다 .

한편 아버지는 심부름을 보낸 아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자 웬일인가 싶어 찾아 나섰는데 가보니 그 모양으로 있는지라 , 아들에게 말하기를 , “ 자 , 넌 이 술 병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 내가 이 자식과 겨뤄볼 테니까 “ 했다 한다 .

◆ 술은 못 끊어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 목구멍에 찰 때까지 마시고 그걸 토해낼 때까지 계속 술잔을 드는 친구가 있었다 . 친구들의 충고도 쇠귀에 경읽기였다 . 오늘도 얼마나 마셨는지 ‘ 왝왝 ’ 통하는 꼴을 본 친구가 닭의 간을 가져다 그 토해 놓은 곳에 섞어 놓았다 . “ 여보게 여기 이걸 보게 .” “ 뭐 뭘 말이야 .” “ 자 , 자네는 이렇게 간을 토했어 . 인간의 오장 중에 하나를 토한 거야 . 사장 (4 개의 장 ) 을 가지고는 오래 살지 못할걸 . 술을 끊게 .”
“ 괜한 소리 , 사장이라고 술을 끊다니 .” “ …… . ” “ 저 천축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이는 삼장이 아닌가 , 그리고 큰 거리의 대장간 알지 ? 그놈의 이름은 이장이야 .”

◆ 술 먹는 꾀
어떤 건달이 술을 먹고 싶은데 며칠째 돈이 한 푼도 없어 굶고 있었다 . 하루는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 그가 마른 침을 삼켜 가며 친구 집을 찾아갔더니 과연 술상이 벌어졌다 . 그러나 친구는 넉넉한 살림이 못되어 충분한 술대접을 못하였다 . 그래서 그 친구는 술을 따르는 동자에게 미리부터 일러놓기를 술잔에 술을 따를 때는 반잔씩만 따르도록 하였다 .

오래 술에 굶주린 그는 동자가 술잔에 반만 채우는 것이 심히 못마땅해서 변소에 가는 척하고 밖에 나와 넌지시 동자에게 , “ 얘 , 나는 배탈이 나서 술을 먹지 못한다 . 그러니 술잔에는 되도록 술을 따르지 마라 . 이건 약소하나 용돈에 보태 쓰도록 하라 .” 하고 엽전 몇 푼을 종이에 싸서 주었다 . 나중에 동자가 그 종이를 끌러보니 그것은 엽전이 아니고 사기 조각이었다 . 성이 잔뜩 난 동자는 그것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은근히 보복할 결심을 하였다 . 그리고 나서는 일부러 술을 술잔 가득히 부어 주었다 . 덕분에 건달은 오래간만에 술을 배부르게 마실 수 있었다 .

◆ 두 냥에 잡혔소
어떤 마누라가 남편에게 무명 한 필을 팔아오게 하였다 . 그 남편이란 사람은 무명 판돈으로 모두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 마누라는 크게 화가 나 꾸짖더니 마시 무명 한 필을 짜서 주었다 . “ 오늘을 술을 마시지 말고 잘 팔아 오시오 . 날마다 술을 마시기만 하시면 생계는 무엇으  로 합니까 .”

남편은 다시 장에 가서 팔고는 술을 외상으로 실컷 마신 다음 , 돈을 허리춤에 차고 돌아왔다 . 그런데 그는 꾀를 내어 자기 밑천을 얽어매어 뒤로 붙이고 집에 들어설 때는 짐짓 크게 취한 체하고 헛기침을 하며 걸어 들어갔다 . 마누라가 또 바가지를 긁었다 .
“ 오늘 또 취해서 돌아왔으니 무명 판돈으로 마셨을 게 아니오 .” 이에 남편은 허리춤에서 돈 꾸러미를 풀러 놓으며 말했다 .
“ 술을 먹긴 누가 먹었단 말이오 . 여기 다 있는데 .” 그럼 무슨 돈으로 술을 이렇게 취하도록 마셨죠 ?
“ 술집 앞을 지나려니 군침이 도는데 차마 돈을 쓸 수가 없어서 그것을 빼어 맡기고 마셨지 .” “ 아니 , 그게 무슨 말이오 . 어디 봅시다 .” 이에 남편이 바지를 벗고 보인즉 , 과연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 마누라가 크게 놀라 , “ 이게 무슨 짓이오 ? 대체 얼마에 전당하였소 ?” “ 두 냥일세 .” “ 자 , 이 두 냥으로 어서 가서 찾아오시오 .”

마누라가 아까운 줄 모르고 무명 판돈에서 두 냥을 꺼내 놓았다 . 그는 그 두 냥을 가지고 가서 외상값을 갚고 몇 잔을 더 마신 후에 검댕을 그곳에다 바르고 오니 마누라가 물었다 .
“ 찾아왔소 ?” “ 찾아오기는 했으나 술집에서 부지깽이로 써서 시커멓게 그을러 버렸소 .” “ 어디 봅시다 .” 보니 과연 새까만지라 , 마누라는 치마폭으로 씻어주면서 , “ 원 망할 놈의 여편네 , 남의 물건을 전당잡았으면 고이 돌려 줄 것이지 이렇게 함부로 굴려 ?” 라고 원망했다 .

◆ 맛이 달라
물레방앗간집 주인이 산 너머 마을로 밀가루 배달을 하러 가게 되었다 . 그런데 산 너머 술집에 예쁜 기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마누라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서방의 몸에다가 밀가루를 흠뻑 칠하고는 , “ 임자가 집에 오면 내 이걸 검사할 테니 조심해요 . 이가루가 씻겨 나가면 집에 돌아올 생각도 말아요 ” 하고 못을 박아 놓았다 .

“ 제기랄 , 밀가루야 어딘들 없을라고 ” 하며 서방은 콧방귀를 뀌고 집을 나섰다 . 그는 배달을 마치고 삯을 받아 , 그 길로 술집에 가서 한잔하고 기생과 재미를 본 다음 시치미를 뚝 떼고 돌아왔다 . 서방한테서 술 냄새가 나자 마누라는 지체 없이 검사를 하였다 . “ 자 , 보란 말이야 .” 서방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몸을 내밀며 뽐냈다 . “ 난 술은 먹어도 몸가짐을 단정했거든 ,” 그러자 마누라는 손고락에다 밀가루를 찍어 맛보더니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 “ 이 능청스런 거짓말쟁이야 . 가루가 다르단 말이야 . 나 가루에 소금을 섞었는데 이거 아무 맛도 없잖아 .”

◆ 한 잔 할까
어느 신혼부부가 어찌나 사이가 좋던지 신랑이 어디를 나갔다 들어오면 사람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아내를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한판 해치웠다 .
아내가 사람 있을 때를 민망하게 생각하여 , “ 사람이 있거든 한잔 할까 하고 청해 주세요 , 그러면 내 슬그머니 골방으로 들어갈께요 ,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는 줄로만 알 게 아닙니까 ?” “ 좋은 생각이오 .” 이리하여 그날부터 한잔 마시는 것으로 약속이 되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장인이 마침 찾아왔는데 신랑이 나갔다가 돌아왔다 . 장인 앞에서 아내를 보고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소 ?” 하니 . 아내가 곧 신랑을 따라 골방으로 들어갔다 , 얼마 후 다시 돌아왔는데 보니 얼굴이 모두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 이를 본 장인이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 “ 괘씸한 것들 , 딸이라는 것이 남만 못하니 이제부터는 아주 발길을 끊으시오 ” 하고 화를 냈다 . 아내는 이상히 여겨 물었다 .

“ 대체 무슨 까닭이세요 .” “ 내가 술 좋아하는 줄은 그년도 다 알면서 골방에 술을 담아 놓고는 저희 내외만 몰래 들어가서 퍼먹고 나오니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오 ? 이제부터는 임자도 그년의 집에 가기만 하면 내 다리를 분질러 놓겠소 ,” 아내는 이 말을 듣고 영감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딸네 집에 갔다 . “ 너희 아버님이 노발대발 하시더라 .” “ 왜요 ” “ 일전에 너의 집에 오셨을 때 너희끼리만 골방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나왔다니 그게 참말이냐 ?” “ 아버님이 오해하신 거예요 . 본래 그 일이 여차여차 해서 그리된 것이지 술은 없었어요 . 술이 있었으면 어찌 아버님께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 어머님께서 돌아가셔서 잘 말씀드리고 아버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리세요 .”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영감에게 “ 오늘 딸네 집에 갔더니 …… .” “ 뭐야 ? 딸년네 집에 갔었다고 ?” “ 그렇게 화만 내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그 일은 여차여차해서 그리된 것이지 골방엔 술이 없었답니다 .” 그제야 영감은 노염 움을 풀고 , “ 그 일이 그런 줄은 내 미처 몰랐군 , 그 방법이 심히 묘하니 나도 한잔 마셔야겠네 ” 하고는 곧 한잔을 마셨다 . “ 한잔 더하리이까 ?” 하고 아내가 말하니 영감은 , “ 늙은이는 한잔으로 크게 취하는구려 .”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