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까미유 끌로델”, 그리고 사랑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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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엄금희 기자)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 폭풍 같은 열정과 낭만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던 프랑스의 여류조각가 ‘ 까미유 끌로델 ‘ 의 연극을 보기 위해 대학로의 예그린 씨어터를 찾았다 .

연극 ‘ 까미유 끌로델 ‘ 은 19 세기 프랑스의 한 정신병원에서 까미유 끌로델의 불행한 종말을 들여다볼 수 있어 안타까웠다 . 천재적이고 열정적인 예술 인생 , 지독하게 외롭고 깊었던 로댕과의 사랑 , 로즈에 대한 시기와 질투 , 배반에 얽힌 혼란스러운 자아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순간을 보며 사랑의 여백을 생각한다 .
까미유 끌로델 , 그녀의 인생행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파격적인 무대 구성이다 .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여백이 없는 지독한 몰입의 사랑이다 . 처절하리만큼 지독한 사랑이지만 결말은 처절했다 .
까미유 끌로델은 천재적인 여성 조각가이자 , 오귀스트 로댕이 사랑한 숱한 여인들 가운데 한 명이다 . 하지만 까미유에게 로댕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 그래서 까미유에게 사랑은 지독하고 잔인했다 .
" 사랑하라 ,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 그대 앞의 모든 것을 사랑하라 , 그리고 예술을 하라 !" 연극 ‘ 까미유 끌로델 ‘ 에서 로댕의 대사이다 .
" 육체와 육체의 결합 , 내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해 활짝 열렸어요 . 다시는 이전의 처녀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요 " 연극 ‘ 까미유 끌로델 ‘ 에서 까미유의 대사이다 .
그리고 까미유는 또 말한다 . " 지독한 사랑의 대가는 너무 처참하지요.
까미유 끌로델에게 있어 사랑은 삶의 전부였다 . 천재 여성 조각가의 진짜 사랑 이야기는 지독했고 집요했다 . 여백없이 로댕을 사랑했지만 로댕은 지쳤고 그녀를 외면했다 .

1929년의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이 보낸 편지

로댕에게는 예술이었고 까미유 끌로델에게는 전부인 사랑이었다 . 사랑 본연의 가치와 다중성에 대해 꼬집는 이 연극은 사랑을 할 때 마음을 채우는 여백이 중요함을 전한다 .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만큼 중요한 것이 프레임을 채우는 여백이다 . 아무리 치열한 사랑이더라도 사랑의 여유로운 공간이 없다 . 로댕에게는 사랑이 여백으로 자리할 마음이 없었다 .
진정으로 로댕은 까미유 끌로델이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동반자였을까 ? 아니라는 생각이다 . 로댕은 자신의 상황과 위치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쉽게 버릴 수 있는 남자이다 .
까미유 끌로델에게 있어 로댕은 지독한 사랑의 대가였다 . 처음 느낀 사랑 , 예술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정신병원으로 갈 만큼 미칠 만큼 지독한 까미유의 사랑은 순수이다 . 순수의 사랑이 부족한 시대에 까미유 끌로델이 던지는 메시지는 평생 한 번은 하고 싶은 부러운 사랑이며 , 바보의 사랑이다 .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 진짜 사랑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다 .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결국 사랑이다 . 이 작품을 통해 천재 작가들의 광기 어린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 사랑이 맑고 투명하게 까미유 끌로델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 사랑이라는 것은 더 줄 수 없는 안타까운 것이다 . 자기의 모든 것 , 그 이상도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인데 그것을 주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은 매우 클 것이다 .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함께 교감하는 것이다 .
" 사랑은 섹스로 완성된다 , 섹스 이상의 사랑이 있을까 ?" 연극 ‘ 까미유 끌로델 ‘ 에서 로댕의 대사는 사랑이 주는 최고의 명언이다 . 그 사랑은 집착을 버릴 때 완성된다 . 여백의 사랑이다 .
사랑할 때 우리는 항상 행복을 생각한다 . 사랑의 시간이 흐르면 진짜 행복을 만나야 한다 . 가장 좋은 사랑은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섹스가 있을 때 행복하다 .
세상에서 외롭고 힘이 들 때 사랑은 언제나 위로를 주고 든든한 활력을 준다 . 그 원천은 여백이 있는 사랑이다 . 자신의 전부를 던지며 사랑이 완벽하길 바랐던 까미유 끌로델에게 집요했던 집착을 떼어냈다면 그 사랑은 성공했을까 ? 영원한 숙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