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여행 ] 미지의 섬 , 엘니도 ‘ 라겐 아일랜드 ’ 에서 보낸 이틀
잠들지 못하는 밤
엘니도 라겐아일랜드 리조트에서의 첫날 밤 . 잠이 쉽사리 오지 않는다 . 그럴만도 했다 . 이 섬에서 보낼 시간은 단 이틀 . 내게 주어진 48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60, 70 시간 처럼 보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 1 분 1 초가 애틋하고 애달픈 지금을 이렇게 가만히 누운 채 보낼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마음대로 벗어둔 바지를 주워 입고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나선길 . 건물 뒷편의 절벽은 완전한 어둠속이다 . 이름모를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깨어있는 밤의 한가운데 . 섬은 조용했다 .
슬리퍼가 바닥에 닿을때마다 모래알갱이의 마찰음이 들린다 . 그 사각대는 소리가 빈 공간을 채울 뿐 , 어느 누구도 쓸데 없는 소음을 내지는 않았다 . 열대의 그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스산한 바닷바람이 휘 불어오고 나면 얕은 바다 수면만이 숨죽여 요동칠 뿐이다 . 섬의 고요함을 내가 흐트려 놓는건 아닌가 싶어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진 것도 그쯤이었다 .
그 적막한 섬의 어둠 한 가운데 . 내가 할 일이라곤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
바다거북을 품은 바다
이 조용한 섬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 섬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지루할 틈마저 못 느낀 탓도 있지만 이 주변 섬에서만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있어서였다 .
우리 일행이 리겐아일랜드를 찾았던 날이 마침 ‘ 그 날 ’ 이었다 . 엘니도 근해는 바다거북의 산란 장소로 유명한데 , 근처의 섬에 산란된 바다거북의 알이 오늘 아침에 부화했단다 . 작은 생명들이 바다의 품에 안기는 광경을 운 좋게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체험은 간단하게 이뤄졌다 . 먼저 리조트 직원들이 바다거북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치자 새끼 바다거북이 안전하게 바다까지 닿을 수 있도록 평평한 모래길 , 일명 ‘ 레드카펫 ’ 을 만들었다 . 새끼 거북이 겁 먹을 수 있으니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지지 말고 진로를 방해하지 말라는 등의 유의 사항까지 전달된 다음에야 한 마리씩 방생됐다 .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 크기만한 여린 생명이 거친 모래길로 한참을 기어가 바다에 닿을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덩달아 커졌다 .
모든 새끼 바다거북이 바다에 안긴 그 순간 . 잘 만들어진 영화도 , 미리 짜놓은 극본이 있는 것도 아닌데 , 때마침 새끼 바다 거북을 품은 바다는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고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역시 주황빛에 집어삼켜졌다 . 단연 그 풍경은 오늘의 이벤트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 됐다 .
이렇게 멋진 해변 , 그 보다 더 멋진 바다속
엘니도의 바다 속을 탐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하고도 짜릿한 방법은 따로 있다 . 미니락 리조트 앞바다에서 잭피쉬와 함께 수영하는 것이다 . 말로만 듣던 잭 피쉬였다 . 고래도 , 상어도 아닌 한낱 물고기가 성인남성의 팔뚝보다 더 커서 바다속에서 만나면 엄청 위협적이라고 다이버들을 통해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다 .
한참 페리를 타고 도착한 어느 섬 . 배가 미니락 리조트와 가까워지자 리조트 직원의 목소리도 한 톤 더 높아졌다 . 벼르고 벼르던 곳을 마침내 도착했다는 듯 , 이 섬에 대한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그다 .
“ 여러분들 앞에 보이는 물고기가 잭피쉬인데요 . 저렇게 생겼어도 굉장히 온순한 물고기입니다 . 여기서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수영하시면 됩니다 .”
말로만 듣던 잭피쉬의 위용은 대단했다 . 큰 물고기라고는 수족관의 두꺼운 유리 뒷편에 있는 것들이 전부였지 이렇게 큰 물고기는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야 죽은 것으로나마 겨우 볼 수 있을 것들이었다 .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큰 물고기가 한 두 마리가 아니라는 것 . 대충 훑어봐도 스무마리는 되는 ‘ 살아있는 ’ 잭피쉬들이 얕은 바다를 점령하고 있다 .
위험하지 않다는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들 틈 사이로 들어가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 수면위에서 본 그들의 모습 . 특히나 오징어 몇 점을 던져 줄 때 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괴수의 모습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 몇 번의 심호흡 후 . 일행 모두가 입수하고서야 겨우 머리를 들이민채 본 수면 아래 세상은 생각보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 여태 잭피쉬가 무섭다고 호들갑떨던게 무안해질 정도로 무심한 녀석들 덕분 (?) 이다 . 혹시모를 위협에 대비해 팔 다리를 아무리 휘저어도 잭피쉬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 바위 사이사이로 드나드는 작은 열대어들 . 투명한 바다빛 , 끊임없이 밀려오는 낮은 파도와 등을 따뜻하게 지지는 햇볕까지 . 모든 것이 완벽하니 ,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엘니도 유람의 하이라이트는 이곳 ! – 빅라군
엘니도가 자랑하는 풍경 또 하나는 섬과 섬 사이 . 수심이 얕은 곳을 통칭하는 ‘ 라군 ’ 이다 . 파도가 거의 없고 , 수심이 얕은 것은 물론 빼어난 경치까지 즐길 수 있어 엘니도를 찾은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됐다 . 이 멋진 곳에서는 무얼하든 신선놀음이 된다 . 물 속에 들어가도 , 카약을 타고 곳곳을 휘젓고 다녀도 , 하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페리위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누구나 ‘ 좋은 팔자 ’ 가 되는 곳이다 . 그래서일까 .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선 주름살 한 줄 찾아볼 수 없었다 . 심지어는 바다에서 카약을 타는 건 거의 처음이라 카약 노젓는 법을 익히기까지 주변의 거의 모든 보트들과 충돌 했을때도 볼멘소리 한 마디 들을 수 없었다 .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힘 . 그 힘은 아름다운 풍경에서 나온 것일 테다 . 한국에서의 팍팍한 삶에 쪼들릴때 마다 필리핀 엘니도가 유독 그리운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