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며 ,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 – 톨스토이 –
꿈을 실천하는 자가 곧 예술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다 . 하지만 대부분 그 꿈들은 싹을 틔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 왜 그럴까 ? 대부분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 생각만 할 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천 ,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볼 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실천적인 작가 , 혹은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는 1828 년 8 월 28 일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 1844 년 ,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3 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의 획일화된 교육방식에 실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
그 후 군인이었던 형을 따라 육군 장교로 입대하고 , 이듬해에 < 유년시절 > 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 전역 후엔 유럽을 여행하고 , 1858 년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
1862 년 , 18 세의 소피야와 결혼한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 전쟁과 평화 > 를 집필한다 .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가 겪은 역사적 현실이 사실적으로 깊이 있게 담겨져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다 .
대표작들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된 톨스토이는 1891 년 , 청빈의 실천을 위해 저서의 판권을 포기하려 했지만 , 가족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 그 이후로 소피야는 남편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 이에 분노한 톨스토이는 결국 가출을 감행한다 . 인류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작품들을 발표하며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남긴 톨스토이가 말년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길을 떠난 것이다 .
기차여행을 하던 톨스토이는 감기에 걸린 후 폐렴으로 이어져 작은 간이역인 아스타포보 역장 사택에서 중태에 빠진다 . 가출 10 일째가 되는 1910 년 11 월 7 일 새벽에 그곳에서 타계했다 .
시신은 그가 살던 아스나야 폴랴나로 운구되어 묻혔다 . 무덤은 그가 쓴 단편 <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에 나오는 것처럼 겨우 몸이 누일 크기이다 . 톨스토이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실천적 사상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야스나야 폴랴나 , 톨스토이의 영혼이 스며들다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 대부분의 창작활동을 펼친 곳 . 야스나야 폴랴나는 러시아어로 ‘ 밝은 숲 속의 초지 ’ 란 뜻으로 , 러시아의 중심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km, 툴라에서 16km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
톨스토이는 80 년이 넘는 생애 중 50 년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다 . ‘ 야스나야 폴랴나 없이 러시아를 표현할 수 없다 ’ 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큰 영감을 준 공간이다 .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그가 사랑했던 영지 ( 領地 ) 의 주민들과 자연환경이 세심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등장한다 . 그만큼 톨스토이가 고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은 각별했다 .
톨스토이공원 입구에서 사과나무 밭으로 둘러싼 가로수 길을 300 미터 가량 걸어 올라가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그가 살던 저택이 보인다 . 큰 정원에 비해 너무나 작은 집은 그가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톨스토이의 서재는 < 전쟁과 평화 >,< 안나 카레니나 >,< 부활 > 등의 대작들을 낳기에는 너무나 좁은 공간이다 . 저택에는 그가 실제 사용하던 가재도구를 비롯하여 책상과 의자 , 자전거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
집 안의 공간이 협소한 만큼 집 바깥으로 나서면 넓은 정원이 나오고 긴 산책로가 이어진다 .
길을 걸으면 톨스토이가 앉아 사색했다고 하는 벤치가 나온다 . 그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위대한 작가가 탄생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 대문호의 성지 ( 聖地 ) 를 순례하는 자라면 누구나 걷고 싶어 할 자작나무길 산책을 마치면 , 그 끝에 톨스토이가 묻힌 무덤이 놓여 있다 .
러시아 , 아니 세계를 대표하는 대문호가 묻힌 곳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무덤은 보리수나무와 물푸레나무 아래에 잔디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 비석이나 표지판 하나 없는 이 장소는 어린 시절 톨스토이의 큰 형 니콜라이가 비밀의 초록빛 지팡이를 묻어 두었다고 한 곳이다 . 82 세의 노인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 형이 얘기 해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일까 .
돌아오는 길 , 대문호와의 짧은 조우 ( 遭遇 ) 가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면 , 모스크바에 있는 톨스토이박물관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그 곳엔 톨스토이의 원고와 편지 , 화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 레코드를 통해 그의 육성도 들어볼 수 있다 .
100 년이 지나도 그의 작품은 영원하다
톨스토이를 유명한 대작들을 남긴 작가로만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작가인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다양하고 , 의견 또한 엇갈린다 .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 ,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 끝없이 방황하고 자괴감에 빠졌지만 , 그 아픔을 승화시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
11 월 , 러시아의 늦은 가을은 겨울에 비해 무척 짧긴 하지만 , 매우 아름답다 . 그 중 야스나야 폴랴나는 그 명칭이 뜻하는 것처럼 수목들이 붉고 , 노랗게 물들어 밝게 빛나며 감동적인 장관을 자아내고 있다 .
이번 가을에는 톨스토이를 만나기 위해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 100 년이나 지난 지각 문상객이라고 해서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 세계 각지에서 그를 기리기 위해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여행팁
모스크바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 툴라에서 빠져 16km 를 더 가면 야스나야 폴랴나에 도착한다 . 이곳은 현재 톨스토이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 톨스토이가 살던 저택을 방문하려면 150 루블 ( 한화 약 6 천원 ) 의 돈을 내야 한다 . 표에는 가이드 이름이 적혀 있는데 , 15~20 명 정도로 그룹을 만들어 반드시 함께 관광을 해야 한다 .
글:정현철 기자/미디어원 사진:러시아 관광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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