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통로
내린천을 따라 달린다 . 스산했던 지난날의 우울을 화장하여 뿌린 듯 돌아서는 여울목 마다 물 흐름이 부시다 . 혹독했던 겨울과는 달리 이제 두꺼운 외투를 벗어낸 계절의 행보가 경쾌하다 .
봄이 오면 산그늘 속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 , 생강나무 …… 남다른 인고의 세월 끝에 피워낸 꽃이라 그런가 울 밑의 개나리보다 노란 개화의 기쁨이 더 맑고 더 깨끗하다 . 응시를 하면 물기 어린 수묵 빛 절제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
내린천 건너 산마을에 살아가는 나로선 바깥나들이가 그리 자주 있는 편이 아니다 . 가끔씩 운전기사가 되어 아내의 외출을 돕는다거나 , 부식 심부름을 하러 30 리 밖 현리 장터까지 다녀오는 정도인데 , 혹간 사람들이 그렇게 지내기에 심심치 않느냐고 물으면 답변이 좀 썰렁하긴 하지만 , ‘ 자연이 있고 , 그림이 있고 , 생활반경 내에 아내의 발자국 소리가 있어 조금도 심심치를 않다 ’ 고 한다 .
흔히 자신을 제한된 시간이나 공간 속에 가둬놓고 지낼 때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 비록 폐쇄된 골짝에 살고 있는 나이긴 하지만 … 내겐 높고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셋이나 있어 삶이 항상 가볍다 .
‘ 그림과 자연과 아내 …’
에테르가 흐르는 더 높고 , 맑고 , 더 푸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비밀통로다 .
글 그림: 최용건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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