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지에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행자의 신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여행지는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본래의 색깔을 잃기 마련이고, 무채색 ( 無彩色 )의 ‘관광지’ 로. 결국은 탐욕과 퇴색된 유명세만이 남는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진 ‘뻔한 관광지’ 에 질린 여행자들 사이에서 ‘에코 투어 (Ecotour)’ 가 요즘 뜨고 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는, 말 그대로 ‘생태 관광’ 이라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에코투어’. 말만 들어서는 저 ~ 멀리 록키산맥이나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비행기로 4 시간 정도면 닿는 필리핀. 그 중에서도 하루에도 여러차례 직항편이 있는 세부에서 배로 두 시간 떨어진 ‘보홀 섬’ 이다 .

밤이 되어야 빛나는 보석같은 시간 – 반딧불 투어
보홀. 그 중에서도 리조트가 밀집된  팡라오 섬’ 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정처없이 밤 길을 헤맸다. 시내를 벗어나 그나마 띄엄 띄엄 있던 가로등 사이의 간격이 점차 멀어지더니 급기야 캄캄한 어둠 속이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위협적으로 느껴질쯤, 이 인근에서는 가장 밝은 네온사인이 바짝 쫄아있던 가슴을 녹여준다. ‘웰컴 투 리오 베르데 플로팅 레스토랑’.

명색이 ‘수상 식당’ 임에도 음식 냄새는 커녕 먹을 만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사라져버린 종업원만 봐도 일반적인 식당은 결코 아니었다. 밤 늦은 시간. 이곳을 찾은 진짜 목적은 사실 다른 것에 있었다. 곧이어 다가온 원형 나무 보트로 옮겨 타는 것을 시작으로 ‘반딧불 투어’ 가 시작됐다. 저녁식사마저 제쳐두고 이 곳에 와야만 했던 ‘진짜 이유’ 였다.

선착장에서 멀어지기 무섭게 그나마 남아 있던 불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명암의 차이만 존재하는 진한 어둠의 공간. 아주 잠시 잃었던 시력이 되돌아오자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광경에 ‘헉’ 소리를 내질렀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늘 구석구석 촘촘히 박힌 별들과 스산하게 불어오는 강바람,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숨죽인 고요 앞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별이 하늘에 박혀 있는 걸까?’ 싶을 만큼, 별 빛 아래를 느리게 유영하던 나무보트가 멈춰선 자리. 선장이 가르키는 방향에 또 하나의 비현실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글과 사진으로는 절대 표현 못 할 풍경이었다. 아마 헤밍웨이가 살아 돌아와도, 한국 최고의 입담꾼 유재석씨가 온들, 나와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끊임없이 점멸하는 빛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시시각각 새로운 ‘빛의 선율’ 이 나무 줄기를 타고 움직이기를 반복하는, 일종의 군무였다. 그 모습을 눈으로만 보기엔 영 아쉬워 카메라를 꺼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카메라의 구닥다리 눈으로는 절대로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인데다 이미지 파일로 박제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은 생명들이 만드는 ‘빛의 축제’ 는 한동안 계속됐다. 몇 미터 전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기 저기서 반딧불 나무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싶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한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와중에도 그 생각만큼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 만개의 별과 빛은 이내 의식의 흐름마저 잔잔하게 만들어줬다. 빠른 시일 안에 보홀을 다시 찾아야 할 핑계거리가 하나 더 생겨버린 순간이었다.
< 보홀 에코투어 2 편에서 계속 >

여행정보
보홀섬 반딧불 투어는 크게 로복강과 아바탄강에서 실시한다. 자연 생태가 더 잘 보존 돼 있고, 반딧불의 개체수가 많은 것은 아바탄강으로 팡라오섬의 주요 리조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쯤 걸리는 위치다.

반딧불 투어 진행 업체는 2~3 군데가 있으며 여러명이 함께 탑승하는 ‘보트 투어 ’ 와 2~3 명이 함께 타는 ‘카약 투어’ 로 나뉜다.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낭만을 원한다면 카약투어를, 편하게 둘러보고 싶다면 보트투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고, 픽업이나 저녁식사 제공 등은 예약시 선택하면 된다. 현지 날씨에 따라 투어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에서 예약대행을 해 주기도 하니 여행전에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겠다.

글 사진: 전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