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많은 우려 속에 연평도 사격 훈련이 시작된 오후 2시 30분.
서울 시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몇몇 시민을 붙잡고 농담처럼 짐 싸야 하는거 아니냐고 물어도 짐짓 ‘설마’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광화문과 명동은 여전히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궁리하는 일군의 일본인,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상체가 거의 드러난 반팔 티셔츠를 입은 멕시코인, 사이좋은 연인처럼 보이는 3명의 중국인들까지.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고, 또 이런저런 사건사고들 속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한국을 방문하려는 관광객에게 재고해보라고 권유
일본 오사카에서 방한한 사토씨(46세)는 한국 배우 고(故) 박용하의 오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벌써 한국을 4번째 방문해 꽤 능숙한 한국말을 늘어놓는 그녀에게 서울은 이미 익숙한 도시였다.
그런 그녀도 이번 한국 방문은 여러모로 꺼려졌단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지난달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꺼려졌을 것이다.
“남편과 자식들 모두 일정을 좀 미루라는 눈치였어요. 올해 6월 갑자기 박용하씨가 떠났잖아요. 올해가 가기전에 꼭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지금 이시각 바로 그 연평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자세히는 모른단다. 한국이 무슨 훈련을 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단다.
이번에는 그런 위협적인 요소가 한국 방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답해달라는 질문을 했다. 일반적인 시민인 자신에게 그런 질문은 너무 어렵다면서도 한국 4번 방문의 관록은 사토씨의 대답에 묻어났다.
“서울은 매력적인 관광지입니다. 서울의 4대문은 운치있으면서도 웅장하고, 또 시내의 고층빌딩과 어우러져 외국인의 흥미를 자아냅니다”라고 입을 연 사토씨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이어졌다.
“최근에 자꾸 관광 외적인 문제 정치나 경제, 사회 등의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그런 것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자꾸 깎아먹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빌딩이 세워졌고, 어떤 문화재가 새로이 만들어졌느나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안전은 관광객의 1차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진 그녀의 말. “사실 일본 정부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려는 관광객에게 재고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자국민을 해외로 보내는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타국가가 여행을 권고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제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다.
# 대한민국 브랜드의 장벽 ‘안보’
한반도 긴장의 불안요소들은 언론의 무차별한 보도에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은 비단 한국언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외언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올해 외국인 방문객 800만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일본의 NHK나 중국의 공영채널 CCTV는 이날 한국의 연평도 사격훈련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을 방문한 자국민들에게 불안을 안겨줬다.
미국의 여타방송이나 유럽지역 통신사에서도 이번 사격훈련은 크게 다뤄졌다. AP, AFP, 로이터, DPA, 교도, 신화 등 주요 통신사들은 수시로 한국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 관련 뉴스를 어전트(Urgent: 긴급뉴스)로 송고했다.
속보 경쟁까지 가열되면서, 로이터는 연평도 사격훈련이 개시되기 전인 오후 2시4분 ‘현지에서 포성이 들렸다’는 긴급기사를 내보내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다. 멀리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선 일요일인 19일(현지시간)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취재하려는 외신들이 대거 몰려, 상황을 주시했다.
한국과 시간대가 거의 같은 관영 신화통신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은 특히 이날 새벽부터 긴급보도를 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혹자는 노이즈마케팅은 부정적인 요소와는 관계없이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효과적인 마케팅방법이라고 말한다. 아직 한국을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번 한반도 긴장은 한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관광은 다르다. 설사 DMZ관광이 세계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관광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안보불안요소들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서울을 꾸미고, 세계적인 축제를 마련하고, 대단한 건축물을 장만한다 해도 위험요소는 위험요소로 남아있다. 보기 좋은 곳, 맛있는 곳, 즐거운 곳 이전에 안전한 곳이라는 명제가 우선 성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 정책을 주관하는 국회와 정부의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무수한 시민들이 친절한 국민성, 깨끗한 서울 시내를 보여준대도 나라의 보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업은 세밀하고 정교한 정책과 엄청난 투자를 요구하는 ‘첨단 유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관광 부문을 ‘변방 산업’에서 ‘핵심 산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절실하다. 단순히 관광 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한 때다.
쌀 퍼주기식의 안보가 아닌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안보. 이것이 완성될 때 관광한국도 일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