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 카사블랑카 ’ 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낭만과 애잔함이 깃들어있다 . 실제로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는 모로코의 도시 , 카사블랑카를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차 그렇다 . 1942 년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 속 두 연인의 인상적인 러브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대사와 함께 추억으로 곱씹어진다 . 주인공 릭 ( 험프리 보가트 ) 이 운영하던 카페 ‘ 아메리칸 ‘ 에 나지막이 흐르던 영화음악 ‘As time goes by’ 를 흥얼거리며 모로코에 당도한다 .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점 ‘ 카사블랑카 ’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는 모로코는 유럽색이 짙은 국가이다 . 특히 모로코 제 2 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동명의 영화로 인해 아프리카보다는 남부 유럽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
북쪽으로는 지중해의 지브랄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 동쪽으로는 알제리 , 남쪽으로는 사하라사막에 둘러싸인 모로코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보다 유럽을 통해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북부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있는 이슬람 문화 역시 카사블랑카의 또 다른 면모이다 . 3000 년이 넘도록 외세에 시달린 세월들은 이제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비쳐지고 있다 . 로마 , 비잔틴 , 이슬람 , 스페인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의 모습은 단순한 낭만으로 그쳐지지 않는다 .
유럽인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 미로 같은 시가지의 골목길 사이로 화려하고 웅장한 이슬람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 다양하지만 어느 하나 특색이 지워진 곳이 없다 . 중심가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은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 세워졌다는 자체만으로 꽤나 놀랍다 .
영화가 선사한 낭만이라는 단어보다 각각의 무늬와 형태가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모자이크가 카사블랑카를 더 잘 설명한다고 느껴진다 .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최대도시다 . 북쪽에 수도 라바트가 있지만 관공서나 기업체 등이 몰려있는 행정 중심이고 , 카사블랑카가 모로코를 대표하는 관광도시이자 경제도시다 .
야자수가 늘어선 시가지를 달리던 차는 바닷가로 나서자 끝없는 대서양이 눈앞에 펼쳐진다 . 대부분의 건물들이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처럼 흰빛을 띄고 있어 태양을 고스란히 비추면 온천지는 오렌지 빛으로 물든다 .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로 꼽히는 카사블랑카 항구는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 작은 고깃배들이 어우러져 있다 . 대서양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진열한 어시장에는 영화에서 보던 낭만보다 활기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 메디나 ‘( 아랍어로 ‘ 도시 ‘ 라는 뜻 ) 에 들어서면 혼잡한 건물들에 눈이 어지럽다 . 수세기에 걸쳐 여러 민족의 침략으로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아온 사람들이 메디나 안에 자신들만이 아는 통행로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골목들은 이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 오랜 역사의 메디나가 카사블랑카 중심지 성벽 안에 자리 잡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
메디나 어디서든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 있다 . 바로 카사블랑카 제 1 의 관광명소 ‘ 핫산 모스크 ’ 다 . 높이가 200m 나 되는 거대한 기둥사원이 우뚝 솟아있어 어디를 가든 눈에 띈다 .
핫산 모스크는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을 막아 만든 간척지 위에 지어져 실내 / 외 각각 2 만 명 , 8 만 명 , 합쳐서 모두 10 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 하람 모스크 ‘ 와 메디나의 ‘ 예언자 모스크 ‘ 다음으로 큰 규모다 . 모스크 건설에 투입된 장인만도 1 만여 명 , 공사 기간은 8 년이나 소요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
높이 뿐 아니라 대리석이 깔린 넓은 광장으로 인해 얼핏 보면 사원이라기보다 고급스런 궁전 같다 . 기둥과 건물 외벽 , 실내 곳곳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 모로코 전통 문양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
코란의 ‘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 ‘ 는 구절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원에서 바로 대서양의 시원한 바람과 석양을 맞이할 수 있다 . 특히 태양이 대서양 건너편으로 지며 내뿜는 빛에 마치 화학반응이 일어나듯 모스크 벽면 주위로 반짝반짝 빛나는 신비로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갤 숙이게 한다 .
흑백영화의 낭만 대신 풍요로운 삶의 매력을
다시 시가지를 지나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면 모하메드 5 세 광장에 도달한다 . 시청사가 위치한 이곳이 중심점이 되어 도로들은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중심지역이다 . 시내 중심가답게 광장 중심의 분수대와 주위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
모로코에서는 카사블랑카에서가 아니더라도 모하메드 5 세라는 명칭이 자주 눈에 띈다 . 1912 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항고해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모하메드 5 세는 마침내 1956 년 독립을 쟁취하자 왕위에 올랐다 . 여전히 많은 모로코인들에게 국부로 숭상 받는 모하메드 5 세를 위해 카사블랑카 말고도 수도인 라바트의 모하메드 5 세 거리나 모하메드 5 세 묘 등을 지어 기념하고 있다 .
앞서 서두에서 밝혔듯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는 영화 속 카사블랑카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 하지만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운 험프리 보거트의 우수에 어린 모습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하메드 5 세 광장 앞 하얏트 호텔 1 층에는 바 카사블랑카가 영화 속 주요 촬영장소인 ‘ 릭스 카페 아메리칸 ’ 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 일 년 무휴로 운영되는 이 카페는 당시 영화 포스터 , 주연 배우들의 사진들이 1960 년대의 복고풍 분위기를 한층 돋워주며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
더 이상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지라는 타이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 이국적 풍경의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 낭만을 꿈꾸며 카사블랑카로 떠나는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의 매력을 안고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
가는 길
아직 인천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 직항노선은 없다 . 카타르 도하나 파리 , 마드리드를 경유하거나 하루 7~8 회 운항하는 스페인 타리파항과 모로코 탕헤르를 잇는 쾌속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까지는 자동차로 4, 5 시간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