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알면 사람과 삶이 보인다

시가를 알면 사람과 삶이 보인다
몇 년 전 덴마크 지인의 파티에 초대받은 기억이 난다 . 자리를 잡고 친구가 건낸 것은 둥근 모양의 알루미늄 통 , 뚜껑을 열자 시가가 나온다 . 웬 시가냐고 물으니 축하할 일이 있거나 , 기쁜 날에는 피워주는 것이 맞다는 대답이다 . 낯설지만 익숙한 시가 , 예전에는 상류사회와 마초의 상징으로 대변됐지만 최근에는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멋과 분위기를 알고 사색을 즐기는 당신에게는 시가가 어울린다 .


< 로미오 이 훌리에타 카사도레스와 코냑 >
# 시가 ? 큐반 시가 !
스페인이 쿠바를 식민지화 한 후 , 시가는 급격히 전 세계로 퍼졌다 . 문화가 발달했던 서유럽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 런던과 파리 등지에서는 저녁 식사 후 시가가 디너 에티켓이 되었다 . 시가는 유럽 복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 재가 연미복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실크 스모킹 재킷은 당시 신사의 필수품이었다 . 오늘날 턱시도가 이 스모킹 자켓에서 발전한 것이고 ,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턱시도를 르 스모킹이라고 부른다 . 미국에서의 인기도 상당했는데 , 19 세기 말부터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
여러 국가에서 시가를 생산하지만 , 쿠바에서 생산된 시가를 최고로 평가하는 이유가 있다 . 쿠바는 연중 온화하고 , 토양이 비옥해 담뱃잎을 생산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 또 , 타바코 잎을 숙성시켜 , 생산하는 과정과 노하우도 쿠바를 최고의 시가 산지로 만들었다 . 토착 원주민들은 이미 수 세기 전부터 타바코를 말아 피우고 있었으니 , 누구보다 전통이 깊고 경험이 많다 .
시가는 브랜드 마다 여러 종류가 있고 게이지나 모양에 따라 많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는 코로나 , 쁘띠 코로나 , 로보스토 , 처칠 , 피라미드 등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위 사이즈를 기억하고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사이즈와 게이지의 시가를 구할 수 있다 .

시가의 역사를 보았으니 , 시가의 내부가 궁금하지 않은가 ? 양파 껍질 벗기듯 시가의 속내를 파헤쳐 보자 . 완성된 시가는 헤드 , 바디 , 풋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헤드는 커터로 잘라내고 입에 닿는 부분이고 바디는 몸체의 한 가운데 , 풋은 붙을 붙이는 부분이다 .
말린 시가를 돌돌 풀어보자 . 겉을 싸고 있는 것은 ‘ 레퍼 (Wrapper)’ 라고 불리는 잎이다 . 햇빛을 보지 않게 키워 부드럽고 질기며 순한 맛을 낸다 . 질감이 부드러울수록 고급인데 , 시가를 처음 집었을 때 촉감이 아주 부드럽다면 , 최상급 시가임을 확인 할 수 있다 . 숙성과 처리과정 등을 통해 여러 색이 나타나는데 , 은은한 초록에서 검정에 가까운 빛깔까지 60 여 가지의 색을 낸다 . 이 레퍼는 포장 , 말 그대로 시가를 싸는 개념으로 맛에는 미미한 영향을 끼친다 .

레퍼 안에는 ‘ 바인더 (Binder)’ 가 있다 . 바인더는 중심의 필러 (Filler) 를 잡아주는 중엽권으로 , 숙성과정에서 탄력을 강화시킨다 . 주로 사용되는 잎은 볼라도를 사용한다 .

가장 중심에 있는 필러 (Filler) 는 맛을 결정하며 , 리게로 (Legero), 세코 (Seco), 볼라도 (Volado) 3 가지 종류의 잎을 사용한다 . 리게로는 타바코 줄기 꼭대기 잎이다 . 햇빛을 많이 받으며 가장 강한 맛을 낸다 . 세코는 중간층 잎으로 리게로 보다 약하며 , 최하층의 볼라도보다는 강해 중간의 맛을 갖는다 . 볼라도는 최하층에서 햇빛을 적게 받은 잎이다 . 리게로와 세코의 강한 향미를 조절해 밸런스를 유지한다 .

# 시가 , 문화와 인간 그리고 소통
시가는 사교 장소에서 애용됐는데 , 그 대상이 귀족 등 지위가 높은 계층이었다 . 자연스럽게 문화와 정치 등 다방면의 대화가 오고갔으며 , 이런 토론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시가를 즐긴 대표적인 인물로는 체 게바라 , 존 F 케네디 , 처칠 등이 있으며 , 시대 풍자적 소설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 천국에 시가가 없다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 ” 고 말해 유명하다 .
시가는 첫 순간부터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데 , 샵 메니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취향에 맞는 시가를 추천 받게 된다 .

품종과 산지의 따라 맛이 다르고 , 컨디션과 장소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피우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 . 낮 시간에는 라이트나 미듐 플레이버 , 저녁 무렵 사색의 시간에는 풀 플레이버를 추천한다 .

시가를 즐기는 방법은 , 커터나 펀치를 이용해 헤드 2mm 가량을 자르거나 뚫고 , 풋의 끝에 불을 붙인다 . 시가의 모든 부분이 일정하게 타들어가야 하는데 , 라이팅 시 불이 고르게 붙어야 한다 . 사용되는 라이터는 화력이 세고 , 냄새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 지포 라이터의 경우 , 기름 냄새가 시가의 맛을 떨어뜨린다 . 황을 사용한 성냥도 안 되는데 , 도구가 없을 때는 삼나무로 만든 얇은 나무 조각에 불을 붙여 시가에 옮긴다 .

끽연 시간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 테스팅했던 로미오 이 훌리에타의 ‘ 카사도레스 ’ 는 라벨 부근까지 태우는데 40 분이 걸렸지만 , 빠르게 피우는 사람은 30 분에도 피울 수 있다 . 시가는 여유가 없다면 사실상 즐기기 힘든 물건이다 .

짧은 시간이라도 시가를 즐기고 싶다면 미니 시가나 클럽시가를 권한다 . 미니시가는 일반 궐련과 같은 크기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 적당히 음미하는 정도에 뜻을 두고 , 코로나 정도의 맛을 기대하면 욕심이다 . 클럽 시가는 미니 시가보다 비교적 크고 , 향미가 강하다 . 시가릴로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 10 분 정도 즐기기 좋아 낮 시간에 선호된다 .
함께 하면 좋은 친구들은 코냑 , 몰트위스키 , 와인 , 커피 등이 있다 . 네 종류 모두 맛과 향에 민감한 것으로 잘 고르면 시가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 일반 담배와 같이 속담배를 시도하다 콜록거릴 독자가 있을까 말해둔다 . 시가는 입담배로 , 연기를 삼키는 것이 아니며 , 연기의 향기와 맛 , 모양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 삼켜도 큰 문제는 없지만 , 건강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

# 시가 , 어디서 즐길 것인가 ?


< 인터컨티넨탈 호텔 시가바 하바나 내부 >
쿠바산 시가를 독점 수입하는 피에르 시가 (Pierre Cigar) 사 社 의 시가 디반 (Cigar Divan) 이 하바나 바 (Havana Bar) 와 이어져 있어 구매 후 바로 즐길 수 있다 .
시가 디반은 로미오 이 훌리에타와 코히바 , 몬테크리스토 등 세계 최고 품질의 큐반 시가를 판매하고 있다 . 다른 샵에서 작은 셀러나 휴미더를 두는 것에 비해 , 룸 통째를 하나의 휴미더룸으로 사용하고 있어 연중 17~18°, 습도 70% 를 유지하고 있다 . 휴미더룸 한켠에는 박스로 구입한 고객을 위한 개인 휴미더가 있으며 , 10 년 이상 단골 고객이 많다 .

디반의 김정은 메니저는 “ 방문객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시가를 추천해주며 , 설명도 들을 수 있다 ” 며 “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보고 , 품질 확인을 하기 때문에 어떤 샵의 제품보다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 ” 고 한다 . 시가는 빈티지와 상태에 따라 가격차가 크다 . 샵에서는 보통 1 만 원대부터 6 만 원대 제품이 주를 이룬다 . 시가에 관심이 가면 주변 용품도 눈에 들어온다 .

휴미더는 습온도 조절기가 있는 삼나무 상자로 , 시가는 반드시 이 안에 보관해야 한다 . 가격은 50~100 만 원대 사이가 주를 이룬다 . 매장에는 시글로와 던힐 제품이 전시 돼 있으니 , 직접 찾아오면 원스톱으로 모든 것을 장만 할 수 있다 . 피에르 시가 한남동 본사에는 서울 시가클럽이 있어 , 회원 가입 후 다양한 시가 할인 혜택과 끽연 기회도 제공한다 . 시가 디반 옆의 하바나 바에서는 시가와 어울리는 주류를 추천한다 . 김주환 지배인이 추천하는 주류는 포트와인이나 싱글몰트위스키로 “ 한 양조장에서 나온 원액은 순수하고 깊은 향을 갖으며 , 시가와는 최고의 궁합을 자랑한다 ” 는 귀띔이다 .
호기심에 시가를 피우던 사람들은 떠났고 , 애호가들이 남아 그 층은 더 단단해졌다 . 비교적 고가지만 시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 저녁 시간 , 푹신한 소파에 앉아 위스키 한 잔과 코히바 로부스토 한 대면 세상 절반은 이미 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