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여행] 달착지근 쫄깃쫄깃 착착 감기는 가을의 맛

속살 야들야들한 꽃게, 기름 잔뜩 오른 전어, 탱글탱글 튼실한 대하. 입이 호사로운 맛있는 가을이 왔다.
풍성한 맛으로 온다. 살 통통하게 오른 꽃게는 집게발을 곧추세워 꿈틀거리고, 깨보다 고소한 전어는 화려한 군무로 가을을 반긴다. 대하는 또 어떤가. 튼실한 속살 뽐내며 하늘로 통통 뛰어오른다. 모두 맛있는 가을 바다가 왔다는 신호다.

집 나간 입맛 돌아오는 전어
모든 생선이 가을에 맛이 오르지만 가을철 대표 별미로는 전어를 꼽는다. 이맘때쯤 전어는 겨울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저장하느라 기름이 한껏 올라 고소한 맛이 절정에 달한다. 가장 맛 좋은 시기는 9월말부터 11월초까지. 크기에 따라 지방 함량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적어도 15cm 이상을 골라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전어는 버릴게 비늘밖에 없다. 뼈째 썰어 회나 무침을 하고, 통째로 구워 먹는가 하면, 내장으로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 전어회는 ‘뼈꼬시’라 불리는데 비늘과 내장만 제거한 뒤 뼈째로 썰어 고추나 마늘을 얹고 쌈장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다. 깻잎, 양배추, 미나리, 당근, 오이 등을 잘게 썰어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전어회 무침은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 따끈한 밥에 얹어 먹으면 이만한 밥도둑도 없다.

하지만 전어 하면 역시 구이를 빼놓을 수 없다. 전어구이는 몸통에 비스듬히 칼집을 넣고 굵은 소금을 솔솔 뿌린 뒤 석쇠에 얹어 통째로 굽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배 부분이 가장 얇기 때문에 머리 또는 등 부분을 잡고 뒤집어야 살이 부서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하면 몸통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유혹적인 고소함이다. 집까지 나갔던 독한 며느리가 왜 돌아왔는지 알 것도 같다.
노릇하게 구워진 전어는 뼈를 발라내지 않고 맨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 제 맛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먹는 전어는 쫄깃하면서도 폭신하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가을 전어의 맛에 푹 빠지기엔 홍원항만한 곳도 없다. 보통 충남 서천과 전남 광양, 경남 사천 등을 대표적인 전어 산지로 꼽는데, 그중에서도 충남 서천의 홍원항을 최고로 친다.

전국 최대의 전어 집산지인 홍원항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어 축제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매년 가을이면 원조 전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근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평소 홍원항은 더없이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항구를 오가는 작은 배들은 한없이 정겹고 토박이 어부들의 묵묵한 세월엔 괜스레 마음이 동한다. 마을을 지키며 마주 보고 있는 빨갛고 하얀 등대는 홍원항의 상징. 등대에 올라 아담한 포구를 한눈에 담거나 주변에 앉아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다.

꽃처럼 황홀한 그 맛, 꽃게
꽃게는 제철이 한 해에 두 번 온다. 봄에는 산란 전의 알이 꽉 찬 암게가 맛있고, 가을에는 점점 살이 차오르는 수게가 맛있다. 꽃게에게도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 셈이다.
꽃게는 암수 구분이 매우 쉽다. 몸통을 뒤집어 배 부분을 보면 된다. 꽃게는 배 아래쪽 껍질이 2중인데, 이 부분이 둥글면 암컷이고 뾰족하면 수컷이다.
꽃게는 탕을 해먹어도 맛있고 통째로 쪄먹어도 일품이며 양념이나 간장으로 게장을 담가 먹어도 좋다. 하지만 살이 꽉 찬 가을 꽃게는 그대로 찌거나 탕으로 끓여 달달하고 쫄깃한 살을 쏙쏙 빼먹으면 더욱 맛있다.
특히 찬바람 불고 국물 생각나는 이맘때에는 칼칼한 꽃게탕이 최고다. 싱싱한 꽃게를 몇 토막으로 나눈 다음 된장과 고추장을 약간 풀고 마늘, 양파, 대파, 무를 넣어 쑥갓을 곁들이면 꽃게의 탱탱한 육질과 시원한 바다의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꽃게는 맛뿐 아니라 영양도 풍부하다. 껍질에는 칼슘과 키토산이 풍부하고 살에는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많아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좋다. 또 알코올 해독작용이 좋아 술꾼들에게 그만이며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타우린도 다량 함유돼 있어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하다.
게다가 가을 꽃게는 봄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 보통 5월을 전후에 잡히는 봄철 암게가 1kg에 2~3만원인데 반해 가을 수게는 1kg에 5000원~1만원선에 거래돼 온 가족 보양식으로도 큰 부담이 없다.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는 대하
대하는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까지 사로잡는 가을철 별미 중 별미다. 성질이 급해서 잡으면 금방 죽기 때문에 산지가 아니면 살아있는 자연산을 만나기 쉽지 않다. 자연산은 양식에 비해 수염이 길고 껍질이 두꺼우며 육질이 쫄깃하다.
대하를 먹는 방법은 구이, 탕, 찜, 튀김 등 매우 다양하나, 산채로 구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것이 애호가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대하 구이는 넓은 냄비에 굵은 소금을 깔고 뜨겁게 달군 다음 대하를 넣어주면 된다. 이때 대하가 퍼덕거리다가 튀어 나가기 일쑤여서 무거운 유리 뚜껑을 잽싸게 덮어줘야 한다. 대하는 소금 위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비린내가 없어짐과 동시에 간이 든다. 이렇게 10여분 정도 지나면 소금 열기가 대하 속살까지 전달되어 알맞게 익는다. 빨갛게 익은 껍데기를 벗기고 토실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착 붙는다. 기호에 따라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맛있다.
머리 부분은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 바짝 구워 먹는다. 탱글탱글한 몸통과 달리 바삭한 맛이 별미다.
대하는 서해안 전역이 산지. 그중 충남 홍성군 남당항에서는 천수만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자연산 대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천수만은 조수간만의 차가 적고 수심이 얕아 대하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지녔다. 때문에 10월 말이면 평균 길이 20~27cm의 크고 먹음직스러운 대하가 남당항 가득 물결을 이룬다.
게다가 남당항은 해질 무렵 풍경이 빼어나 싱싱한 대하를 먹으며 붉은 낙조를 감상하기에도 좋다.

탐스러운 가을을 줍다
공주 알밤 줍기 체험 맛있는 가을을 입으로만 즐기기엔 아쉬움이 남는다면 밤 줍기 체험을 떠나보자. 가을 햇살에 툭툭 떨어지는 밤송이 길을 걸으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 굵은 알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즈음 옹골진 밤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은 바로 충남 공주. 그중에서도 정안면에는 밤송이가 가득 달린 우람한 밤나무들이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올 가을 정안면에서 알밤 줍기 체험이 가능한 농장은 17곳. 체험비를 내면 자그마한 양파망 한 개씩을 주는데 여기에 알밤을 주워담으면 된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빼곡하게 심어진 밤나무 천지다. 땅에는 빈 밤송이와 단단한 밤알이 마구 섞여 있다. 알맞게 익은 밤송이는 하늘을 향해 툭툭 터지고 아이들은 햇밤을 줍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긴 막대기 휘휘 저으며 알이 굵은 밤을 찾아다니거나 가시를 피해 밤을 빼내기 위해 진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망 한가득 밤이 담긴다.
농장 규모에 따라 많게는 수백명이 함께 체험을 즐기는 경우도 있으나 농장에서 구획을 나눠 사람들을 분산시키므로 혹시 밤이 없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체험비는 3kg를 담을 수 있는 망은 1만원, 1.5kg는 5000원. 체험까지 즐기면서 일반 소매로 구입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햇밤을 가져갈 수 있어 매력적이다. 단 체험을 하려면 긴 옷과 두꺼운 면장갑은 필수. 또 바닥에 밤송이가 많으므로 발이 드러나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아울러 나눠준 자루 외에 주머니나 가방에 밤을 넣어 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알밤 줍기 체험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공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gongju.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사진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