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영웅 홍수환
이른 아침, 홍수환씨와 유명우씨가 피소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홍수환과 유명우가 누구인가?
가히 한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이 아닌가? 챔피언 중의 챔피언 홍수환과 오직 권투밖에 몰랐던 유명우를 또렷히 기억하기에 아침의 시작이 꽤나 불편하다.
한국이 나은, 그야말로 불세출의 복싱영웅 홍수환을 회상해 본다.
" 4전 5기의 신화를 쓴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대전"
홍수환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석자를 잊지않고 살고 있을 것이며 적어도 나는 아마도 살아있는 한 잊어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바로 한 시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1974년 7월3일 아침 등교길이었다. 84번 버스 안은 온통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권투중계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1966년 김기수 선수가(작고)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판정으로 이기고 처음으로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후 근 십년이 다 되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홍수환이 이름조차 생소한 남아공 더반에서 WBA 밴텀급 타이틀 전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권투와 레슬링은 볼 것 즐길 것 없던 그 시절 가장 인기있는 전국민 스포츠였다. 권투와 레슬링 시합이 벌어지는 날이면 애 어른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 티비며 라디오 앞에 둘러 앉아 때론 숨죽이고 때론 열광하며 지켜보곤 했다.
홍수환선수의 1974년의 쾌거는 적지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한국의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한 말과 그 어머니의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말로(‘대한민국 만세다’가 아님) 더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의 어떤 유행어보다 오래 그리고 자주 우린 그 말을 애용하면서 깔깔 거렸었다.
홍수환선수의 챔피언 등극이후 한국 복싱은 본격적인 중흥기에 접어 들었다. 염동균, 장정구. 유명우, 김사왕,김태식,박찬희, 박종팔을 비롯,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배출되었고 대한국민은 권투에 온통 빠져 들었다.
1977년 홍수환선수는 또 한번의 기적을 연출한다. 파나마의 복싱영웅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WBC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전에서 무려 4번의 다운을 당한 후 기적같은 역전 KO승을 이룬 것이다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시합 전 전문가들은 모두 홍수환선수의 불리를 예상했었고 시합을 시작하자마자, 예상했던 데로 카라스키야는 무시무시하게 홍수환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나뒹굴던 홍수환은 그러나 4번의 다운에서 일어나자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카라스키야를 몰아붙여 KO 시켜버렸다. 어떤 드라마보다 강렬하고 감동적이며 믿을 수 없는 반전에 국민 모두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의 영웅은
특유의 입담으로 매스컴을 통해 국민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당시 한창 주가를 높히던 톱가수 옥회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화제의 중심메 서기도 하였다. 직선적인 성격탓으로 말도 많고 탈도 가끔은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홍수환을 그렇게 영웅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영웅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옥희와의 재결합 후 방배동에서 작은 고깃집을 한 홍수환선수를 회사 뒤켠의 골프연습장 회원으로 자주 만나 차도 마시고 서로 골프 얘기도 주고 받았다.
소탈하고 남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그에게서 오만하거나 건방지거나 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허물없는 동네 형님으로, 고깃집 주인으로 대하는 그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은 바로 "권투"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자신의 지난 시간에 대한 자랑은 들은 적이 없지만 한국 권투의 침체에 대해 근심 걱정을 이야기 할 때에는 "4전5기’의 집념을 고스란히 보이며 열변을 토하곤 했다.
영웅 홍수환이 피소 되었다는 뉴스는 이 아침을 씁쓸하게 한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겠냐마는 소인배들에게 시달릴 우리 영웅에게 안스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건강하고 행복한 2012년의 홍수환선수를 기대한다.
아직도 홍수환 대표보다 홍수환 선수가 자연스러운 것은 그를 영원히 권투 선수 홍수환으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