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공연’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따분하고 지루한 구성? 느리고 슬픈 가락? 아무리 생각해도 고만고만한 상상뿐이라면, ‘자미’를 모를 가능성이 크다.
<자미>가 달라졌다. 훨씬 재밌어졌고, 한결 친절해졌다. 대금과 소금, 피리의 소리를 하나하나 비교해서 들려주는가 하면, 접시를 돌리고 추임새를 넣으며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는다.
복색은 화려하나 유난스럽지 않고, 곡조는 흥겨우나 흘러넘치지 않는다. 마치 혀를 자극하는 말초적인 맛은 없지만 대신 온갖 정성을 담아 차려낸 잔칫상을 받은 기분이다.
삼청각이 2010년부터 선보인 <자미(滋味)>는 정갈한 한식과 국악공연이 어우러지도록 꾸민 프리미엄 런치 콘서트다. 올해는 정악, 민속악, 연희 등 중요무형문화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무대를 꽉 채운다.
공연은 국악 앙상블 ‘청아랑’이 들려주는 <수룡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청아랑(靑蛾娘)은 ‘누에나비의 촉수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눈썹’이라는 의미. 이름처럼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젊은 여성들로 구성됐다.
청아랑의 맑은 음색은 젊은 가객 이기쁨의 애절한 소리를 만나 한층 깊어진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인상적인 이기쁨은 여창가곡 <북두칠성>을 노래하고,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연서(戀書)가 되어 화면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진다.
판소리꾼 이봉근은 ‘얼쑤’ ‘잘한다’ 등 추임새를 알려주며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관객들은 점점 크고 신나는 추임새를 구사하며 소리꾼의 흥을 돋운다.
꽃이 달린 갓과 양면 탈을 쓴 두 사람이 소고놀이를 하는 ‘탈벅구’도 인상적이다. 탈벅구는 전라도 사투리로 농악에 사용되는 작은 북을 일컫는‘벅구’와 가산 오광대 탈을 색다르게 제작한‘탈’의 합성어다. 그들은 슬그머니 등장해 조그맣게 춤 길을 열고 앞뒤, 좌우로 나며 들며 놀다가 다시 슬그머니 퇴장하는데, 그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관객의 박수가 가장 큰 무대는 ‘버나놀이’다. 버나놀이는 재담을 주고받으면서 기다란 나무로 버나(대접이나 바퀴에 헝겊을 덧댄 것)를 돌리거나 하늘 높이 던져 받아내는 공연으로 아슬아슬한 재미를 선사한다.
꼬챙이로 버나를 돌리며 입담을 과시하는 광대들은 무대 아래까지 파고든다. 관객이 아무렇게나 던지는 버나를 척척 받아내는 광대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관객과 광대가 스스럼없이 흥을 주고받으며 기를 나눈다.
영화계와 손을 잡으면서 한층 신선해진 분위기도 눈길을 끈다. 영화 <타짜> <황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에 참여한 음악감독 장영규와 <형사> <다세포소녀> 등의 미술감독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미술상을 받은 바 있는 이형주가 <자미>에 힘을 보태며 이전보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이끌어냈다.
미디어아트 작가 뮌(Mioon)이 한국문화를 재해석한 영상도 공연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물속의 용이 읊조린다’는 의미를 담은 <수룡음(水龍吟)>과 어우러지는 영상은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는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관객의 이목을 끌어들인다.
한편 공연이 끝나고 맛볼 수 있는 자미정식코스는 여전히 맛깔스럽다. 식사에는 요일별로 바뀌는 메인요리(월요일 갈비찜, 화요일 연어비빔밥, 수요일 불고기 덮밥)를 중심으로 입맛을 돋우는 계절죽과 밀전병 쌈, 관자구이, 전유어, 잡채, 후식 등이 포함돼 있다.
글 사진: 박은경 기자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본 기사의 copyright는 한국관광공사에 있으며 관광공사의 정책상 무단전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