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증도에 가면 천년의 숲길이 있다

가끔 일탈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 지금의 나에게서 벗어나 내 안의 내가 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야근과 마감과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서 만나는 똑 같은 사람들 … 그런 모조품 같은 인생이 아니라 진짜 나의 삶을 찾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내 자리를 채워버리면 그만인 공허한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완전한 나의 모습 말입니다 .

새해를 시작하면서 ‘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 ‘ 고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불과 한 달하고 보름 만에 정확히 말하면 결과물이 나오자 마자 데자뷰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

사람을 믿은 결과치곤 가혹했고 코미디 같았습니다 . 그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존재감에 한 껏 취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 이번에 만난 그들도 다르지 않더군요 . 특히 , 돈에 대해서는 자신의 계산이 틀린 것도 확인하지 않고 자신있게 말하며 마치 적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배려의 탈을 쓰면서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그런 모습을 돈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요 ?

그냥 넌센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왜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것일까요 ? 그것은 아마도 돈 때문일 것입니다 . 그가 가진 돈이 그런 힘을 발휘하는 것이죠 .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하기 힘든 엄청난 돈 ( 또는 권력 ) 을 가진 사람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을 가리게 되나 봅니다 . 어쩌면 사회화 과정이란게 그런 자동걸름 장치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역시 사람은 죽기전까지 알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 타협과 배신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곳이 바로 매트릭스 같은 사회니까요 .
결과적으로 저 또한 타협과 배신을 당하며 상처 하나가 또 늘었습니다 . 따뜻한 봄이 오면 천년의 숲길에서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