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나중소’ 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 9 월의 독립운동가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 나중소 ’ 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 관장 윤주경 ) 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을 9 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나중소는 1867 년 4 월 13 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출생하였다 . 1882 년 16 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고 ,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함북시찰관과 진위대 부위 ( 副尉 ) 로 활동하였다 .

1917 년 51 세의 나이에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 1919 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되어 독립군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 대한정의단이 대한군정서로 확대 개편되자 대한군정서의 참모부장으로 김좌진과 함께 활동하였다 .

1920 년 2 월 초 북간도 왕청현에 대한군정서 사관연성소를 설립하고 , 애국심이 투철한 청년 300 명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 . 1920 년 9 월 9 일에 제 1 회 사관연성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 졸업생 298 명 중 80 명은 소위로 임명 · 배치되었고 , 나머지 200 여 명을 중심으로 교성대 ( 敎成隊 ) 가 조직되었다 . 교성대는 대한군정서의 최정예부대로 청산리전투 당시 백운평전투와 천수평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였다 . 교성대의 대장이 바로 나중소였다 .

청산리대첩 후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통합운동을 주도하였다 . 1921 년 4 월 12 일 러시아에서 활동 중이던 36 개의 독립군 지도자들은 ‘ 독립군대회 ’ 를 개최하고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다 . 이때 나중소는 이장녕과 함께 참모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

하지만 대한독립군단의 계획은 1921 년 6 월 자유시참변으로 좌절되었다 . 서일 · 김좌진 등과 함께 북만주를 돌아온 뒤 만주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들의 통합운동을 추진하였다 . 그 결과 1924 년 3 월 대한군정서를 재조직할 수 있었다 .

나중소는 1925 년 1 월 대한독립군단 · 대한독립군정서 등의 지도자들과 함께 부여족통일회의를 개최하고 , 신민부를 조직하였다 .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회 및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1926 년 3 월에는 신민부 돈화변사부를 설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 이와 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 년 8 월 18 일 돈화현에서 순국하였다 .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활동을 기리어 1963 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기념관에서는 나중소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9 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