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가 챈스를 집으로 데려왔네 . 자네가 챈스의 증인인 거야 . 증인마저 없다면 전사자들은 모두 사라져버릴 테니까 .> – 영화 [ 챈스 일병의 귀환 Taking Chance, 2009] 중에서 .
케빈 베이컨이 출연한 영화다 . 그가 출연한 여러 편의 영화들을 봤지만 젊지도 않고 , 꽃중년도 아니고 , 화려한 언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 숨 막힐 듯한 스릴이나 액션이 없는데도 , 그의 엄숙한 태도와 표정과 거수경례가 다른 어떤 영화 속 그의 모습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
케빈 베이컨이 맡은 역할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대 중령이 쓴 글을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 영화 속에서 그가 하는 일은 , 비행기와 자동차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 이라크 전에서 전사한 열아홉 살 청년 챈스 펠프스 일병의 시신을 그의 고향으로 운구하는 일이다 .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무겁고 엄숙하다 .
챈스 일병의 운구를 자원한 스트로블 중령은 관이 비행기에 실리고 차에 옮겨 태워질 때마다 애도의 진심을 담아 아주 천천히 , 거수경례를 한다 . 그는 운구하는 며칠 간 임무 중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 의복도 자세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 비행기가 연착되어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동안 호텔로 가서 좀 쉬라는 주위의 권유를 마다하고 , 화물 창고에서 챈스가 홀로 버려져 있지 않도록 , 관 옆에서 그를 추모하며 밤을 보내기까지 한다 .
그러나 감독이 영화 속에 담아낸 건 , 전쟁터에 자원하는 대신 가족과 평화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 행정장교를 선택했던 중령의 죄책감에 기인한 애도만은 아니다 . 전사자의 시신을 닦는 이의 눈길과 피 묻은 유품을 닦는 손길 , 시신에게 입힐 군복의 주름 하나 , 휘장과 견장 , 관을 감싸는 성조기를 손질하는 작은 몸짓에도 정성과 감사와 안타까움을 담았다 . 운구 과정 중 중령이 관을 향해 경례를 할 때마다 화물운반자들도 , 비행기 승객들도 함께 숙연해진다 . 마지막 목적지에 착륙했을 때는 전사한 해병대원을 운구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면서 운구 임무를 맡은 중령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 기장이 직접 승객들에게 당부를 하기도 한다 . 어떤 위로의 말로도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테지만 , 챈스의 시신과 유품을 유가족에게 전하며 중령은 이렇게 말한다 .
" 챈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닙니다 . 미국 전역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 동안 , 챈스의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애도하고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
부시 정권 중 치룬 이라크 전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의 희생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 중요한 건 챈스 일병이 미국 국민이기에 전쟁에 참여했고 , 챈스와 같은 병사들이 있었기에 국가의 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 그들의 참전이 있었기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이 국가가 그들 한 명 한 명을 잊지 말고 보살펴야 하는 이유 , 그것이 참전용사의 희생을 국민 모두가 애도하며 존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
오늘은 6.25 전쟁 67 주년 기념일이다 .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126 만 9,349 명이 참전했으며 현재 약 18 만 명이 생존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그런데 참전명예수당으로 지급되는 금액은 월 15 만 원이 전부 , 그나마도 부상 경력이 없거나 기초생활수급자일 경우 삭감되거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 6.25 참전용사들 뿐 아니라 모든 국가유공자에게 해당되는 , 나라와 국민을 위해 삶을 바쳤으나 거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 이에 비해 5.18 유공자라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의 혜택은 다음 표와 같다고 한다 .
( 참고 블로그 http://m.blog.daum.net/as10456/3321)
영화니까 얼마만큼의 과장과 미화는 있으리라 감안하더라도 , 국방영화냐 , 국수주의 , 국뽕 영화냐 , 우리나라 깨시민 네티즌들 평에서 언급될 말들을 예상하면서도 , 이런 영화를 통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의 의무와 헌신 , 그런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그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사회 전체의 자긍심과 애도 ,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와 배려를 이렇게나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새삼 부럽기만 하다 .
그나저나 , 세상엔 공짜가 없는 게 정말 확실한 것 같다 . 목숨으로 이 나라를 지켜주신 선배 세대 덕분에 전쟁 걱정 없이 내 꿈만 쫓으며 살 수 있었는데 , 이젠 나라와 국민과 후배세대를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니 말이다 .
글: 김규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