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018년 3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및 전시회 개최

482

(미디어원=정인태 기자) 독립기념관 ( 관장 이준식 ) 이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원벽을 2018 년 3 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

◇ 연희전문학교 학생으로 3·1 운동을 준비하다 .

김원벽은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 1914 년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하였다 . 1919 년 2 월 박희도 ( 朴熙道 )· 이갑성 ( 李甲成 ) 등과 모임을 가지면서 3·1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

2 월 25 일 , 학생 대표들과 정동교회 이필주 ( 李弼柱 ) 목사의 사무실에 모여 만세운동의 추진 계획을 논의하였다 . 그 결과 3 월 1 일에는 중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진행하고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은 제 2 차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로 결의하였다 .

2 월 28 일 , 승동교회에 다시 모인 학생 대표들은 이갑성에게 받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졌다 .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전문학교 학생들은 3 월 5 일 남대문역에서 제 2 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

◇ 학생 대표로 3·1 운동을 이끌다 .

1919 년 3 월 1 일 , 김원벽과 학생대표들은 오후 2 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을 것임을 학생들에게 전하였다 . 동시에 제 2 차 만세운동의 계획을 말하고 3 월 1 일 시위에 가급적 참가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였다 .

3 월 4 일 김원벽은 학생대표들과 배재고등학교 기숙사에 모여 3 월 5 일 오전 9 시 남대문역 ( 현 서울역 ) 으로 집결하기로 결정하였다 . 이튿날 오전 9 시 김원벽은 인력거를 타고 ‘ 조선독립 ’ 이라 쓴 깃발을 흔들며 남대문역으로 나아갔다 .

김원벽의 만세소리를 듣고 모여든 군중들과 함께 ‘ 대한독립만세 ’ 를 외치며 남대문을 거쳐 대한문 , 종로 보신각으로 나아갔다 . 하지만 김원벽은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혀 2 년간 옥고를 치렀다 . 정부는 1962 년 김원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