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라 쿠마리 구릉’은 네팔 노동자로 1990년대 한국에 왔다. 가게에서 라면 한 그릇 먹었는데 지갑을 두고 와 돈이 없었다. 한국어가 안 돼 주인은 행려병자이거나 정신병 환자인 줄 알고 신고했다. 잡힌 뒤 강제로 어느 정신병원에 갇히고 말았다. 무려 6년 이상 기약없이 갇혔으니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어느 의사가 구세주였다. 그녀가 “네팔”이라는 말을 하자 네팔인을 수소문해서 연결, 드디어 통역이 됐다. 억울한 감금 상태였기에 한국 정부 보상, 일반 성금 등을 받아서 귀국했다. 지금은 네팔에 돌아가 조용히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사건은 다큐멘터리로 나올 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이 어이없는 사건에 대해 오래전 해결사 노릇을 한 네팔 사업가와 얘기를 나눴다. 찬드라 쿠마리 구릉의 이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네팔 힌두교 여신인 쿠마리가 들어가 있으니 여성이고 힌두교 신자임을 알게 된다. ‘구릉’이라는 글자를 통해서 네팔의 몽골계 부족인 구릉족임을 알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누군가 이런 이름을 쓰는 여성이 있다면 네팔 여자이다. 특히 관광도시로 유명한 포카라에서 일출이 빼어난 안나푸르나산 중턱에서 양을 치다가 한국에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녀는 안나푸르나산 ㅡ> 포카라 ㅡ> 칸트만두 공항 ㅡ> 인천공항 ㅡ> 한국 공장으로 온 게 틀림없다.
다민족 국가인 네팔은 몽골계 여러 민족이 한국인과 거의 구분이 안 된다. 요즘이야 핸드폰으로 번역할 수 있고, 네팔인이 7만 명 넘게 한국에 와 있어 저런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네팔인들 중 구릉족은 사업가, 유학생, 근로자, 결혼 이민자, 귀화 등으로 오면서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네팔은 1994년 이후 해외로 노동자가 나갈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정부 관계자나 구르카 용병들이 영국에 가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 해외 여행 자유화 국가가 아니었다. 외국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소수의 특권이자 특별한 일이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이고 북한에 막혀 있어서 섬 아닌 섬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한국에서만 살다 보니 외부 문화를 잘 알지 못한 채 살았다. 그래서 죄 없는 네팔 여성 노동자가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걸인처럼 오해를 받는 일까지 벌어진 게 아닐까? . 지금은 21세기이다. 지구촌이 나날이 초연결 사회로 가고 있다. 마음도 생각도 열려야 진정한 지구촌 시민이 되지 않을까?
글: 체리 이연실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