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웨토, 화합과 평화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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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여행의 첫 목적지는 ‘소웨토(Soweto)’다. 여행의 첫 시작을 이 곳으로 결정한 것은 이 곳이 바로 ’반(反) 아파르헤이트‘, 즉 흑인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그들의 질곡된 삶은 좀 더 여실히 투영될 것이며 나는 이 흥미로운 나라를 꽤나 깊이 있게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소웨토는 얼핏 원주민 언어 같은 느낌을 주지만 영어 South Western Township의 약자로써 요하네스버그를 기준으로 한 남서쪽 지역의 흑인집단거주지를 의미하는 과거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의 상징과도 같은 명칭이다.

소웨토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두 영웅,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소웨토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주도하며 인종차별정책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맞섰던 두 영웅,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라는 거인들을 탄생시킨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투 대주교는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1993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이곳 소웨토는 ‘관용과 화해의 발상지’로 기억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 백인정권에서 법률로 제정한 인종분리정책을 말한다. 인종차별이 아닌 분리를 통한 발전을 내세웠지만 허울 좋은 구호였을 뿐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의 차별을 정당화한 정책이다. 국내외의 비난과 거센 저항에 직면했던 아파르트헤이트는 넬슨 만델라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1991년 폐지되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CN)의 지도자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1994년 세계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넬슨 만델라의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성공회 주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 역시 참여했으며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했다. TRC는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 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 사면하였으며, 나중에는 경제적인 보상까지 받도록 하는 등 진정한 진실과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역할을 다 함으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픈 과거를 지우고 하나 된 나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소웨토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헥터 피터슨’박물관

소웨토에서 여행에서‘헥터 피터슨’ 박물관은 빠질 수가 없다. 1976년 6월 16일 영어대신 아프리칸스어( Africaans)를 사용하라는 정부의 지시에 항거하던 데모대를 향해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시작되었고 12세 소년 헥터 피터슨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의 친구에게 안긴 그의 모습은 사진작가 샘 은지마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헥터 피터슨의 죽음 이후에도 1976년 한 해 동안 700여명의 학생과 주민들이 희생을 당했으나 그들이 자유를 얻은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였다. 1991년 아프리카 단결기구 (OAU)는 소웨토봉기의 날인 6월16일을 ‘아프리카 청년의 날’로 지정한다.

1994년 민주주의가 도입된 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노력의 일환으로 헥터 피터슨 박물관이 건립되게 되었다. 인종차별정책에 따라 지어졌던 마을 주택과 같이 적벽돌을 주재료로 지어진 2층 높이의 박물관은 주위의 도시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중 천장과 콘크리트 기둥, 그리고 적벽돌 벽으로 지어진 내부는 마치 성당과도 같아 보인다. 불규칙적인 형태로 사방에 만들어진 창문 너머에는 이곳이 실제로 소웨토 사건이 일어났던 곳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외부 광경이 펼쳐진다. 헥터 피터슨과 함께 사망한 다른 아이들을 위한 혈암(頁岩) 추도비가 미술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어 수많은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났었고,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소웨토의 곳곳은 일곱 빛 무지개 색깔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 인도에도 주택의 담벼락에도 예쁜 무지개가 걸려 있다. 그것은 화해와 화합을 의미한다고 한다.

소웨토는 아직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16킬로에 위치한 흑인 주거지일 뿐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흘러넘치는 남아공의 대도시들과 달리 아직 도시 환경과 거주민들의 생활에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일자리는 여전히 찾기 어려운 듯 보이고 요하네스버그를 벗어나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왜 그들이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확신 했을까? 긴 세월동안의 억압과 악행을 용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하겠다는 넬슨 만델라후손들의 용기와 큰 사랑은 소웨토를 넘어 남아프리카 전체에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