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벌써 25년 넘게 자작나무를 그려온 그의 나무 그림을 바라 보노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애지중지하던 빨강 파랑 노랑 구슬과 그리고 가장 소중한 반투명의 파란 구슬이 슬며서 떠오른다. 그 속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몹시도 화려했던 그 곳 세계, 아이들은 밝고 쾌활했으며 복실이며 쫑도 기가 한참 살았던, 모든 것이 풍요롭기만 한 곳이었다.

김연화 화백의 자작나무 그림은 나를 수십년을 거슬러 그 곳으로 데려 가곤 했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마법사의 바퀴 하나 달린 마차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김화백과의 만남도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기억이 흐려질 무렵이면 전해오는 전시회 소식에도 반가움만큼 자주 찾지는 못했기에 오랫동안의 아쉬움을 인터뷰 속에 모두 담아버리기로 했다.

김연화 화백님 반갑습니다. 먼저 화가가 되신 계기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고향이 시골인 저는 언제나의 아침을 닭울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열었고 비가 온 후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작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마당 한켠에 키낮은 채송화와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들을 이쁘게 가꾸시던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이름을 외웠고 여름에는 봉숭아꽃에 백반을 섞어 둥둥 매어 손톱에 꽃물을 예쁘게 들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집앞엔 들녘이 집뒤엔 작은 산이 있었는데 비가 온 후엔 구름이 산에 걸리는 신기한 풍경을 보여 주었는데 그때부터 저의 상상은 시작 되었고 종이만 있으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종이가 귀하던 시골에서 제가 떼를 쓰면 아버지께서는 종이를 찾아 주셨고 오빠들의 쓰다 남은 공책들은 제 스케치북이 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업드려 그림을 그렸다가 아버지께서 돌아 오시면 보여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선 우리 연화가 그림을 잘 그린다며 칭찬을 해주셨고 벽에 밥풀로 붙혀 놓았다가 친구분들께서 오시면 “우리 연화가 그린건데 어때? 잘 그렸지? “하시며 어김 없이 자랑을 하시면 친구분들께서는 ‘허허’ 웃으시며
‘정말 잘그렸다’며 칭찬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칭찬에 힘 입어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교실 뒷편에 어김없이 제 그림이 걸렸으며 친구들 그리기 숙제는 물론 인형옷도 그려주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맛있는것을 사주던 기억도 있군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아버지께서 왕자파스 32색과 스케치북을 사  주신후엔 더욱 자신감이 생겨 학교 대표로 나가 상을 타게 되면서 그림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지요.

한번은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날짜가 겹쳤다며 그림 대회와 글짓기 대회중에 한가지를 나가야 한다며 이번엔 글짓기 대회를 나가보라 하셔서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작은 시골 마을의 공소 회장 이셨지요. 한달에 한번 배달 되어온 소년이란 잡지를 읽고 또 읽고 하였는데 그때 동시를 읽고 자주 써 보았던 것과 일기를 꾸준히 쓴것이 지금도 시를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려선 빈한한 시골이 싫었는데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보니 보니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셨군요. 김화백님이 화가이면서 시인인 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요. 게다가 사진도 이미 상당한 경지라고 들었습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만남을 위해서 남겨 놓고 이제 다음 질문을 드립니다. 자작나무를 그리시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시적 메타포와 영화를 통하여 자작 나무에 대한 여행은 시작 되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타던 소년 이었습니다,
많은 걱정에 지치고
인생이 길없는 숲속을 걷는것 같을때
얼굴에 거미줄이 애 걸려 화끈 거리고 간지러울때
내눈 하나가 작은 나무 가지에 긁혀 눈물이 흐를때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운명이 나를 오해하고 내소원을 반만 들어주어
나를 데려 갔다가 다시 돌아 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세상은
사랑하기 좋은곳
더 좋은 세상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ㅡ자작나무ㅡ중

결혼후 육아와 함께 중단했던 그림은 내 마음이 힘들고 이유없이 아프기 시작하고 모든것이 시들했던 때에 그렇게 내게 다가왔습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나무인 자작나무는 신성의 나무입니다. 몽골 이나 시베리아의 무속인들은 종교적 성수로 여겨 기도하는곳이나 제사를 모시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작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과의 매개자가 되어 초월적 세계로 이끄는 우주목이 바로 자작나무 인것이지요.

죽어야 비로소 별에 이르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자작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영혼의 쉼터인 우주에 이르는 자작나무는 신령과 이효석의 글에서도 언급된다
“뽀얀 피부를 한 훤칠한 여인의 몸매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희고 고운 껍질은 자작나무의 자태를 빚나게 하고 줄기 뿌리와 함께 약용으로 쓰이며 잎은 좋은 차로 알려져 있으니 아름다움 외에도 요긴한 쓰임새가 있다. 살아있는 자작나무에 기생 하여 자작나무를 고사시키는 차가 버섯은 항암 성분이 어떤 버섯 보다도 많이 함유 되어 있다고 하니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나무입니다.

백석이, 클림트가, 헷세가, 프로이드가 사랑한 자작나무를 그리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내가 힘들었을때 다가와 말을 건네며 위로가 되었듯이 수 많은 그림들중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유일한 그림 이기를 내 그림이 외롭고 아픈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희망으로 읽혀 지기를 바라며 가장 좋은 기분일때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자작나무그림을 그립니다. 러시아 감독 이칼로프의 ‘시베리아의 사랑’속으로 들어가, 시리도록 하얀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기찻길옆 사관생도들이 지나는 장면속을 떠올리며…..

자작나무를 그리는 다른 화가 분들이 몇 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소개와 차이점을 듣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답하기가 쉽지는 않군요. (웃음)
키스로 유명한 클림트가 있군요. 국내에도 많은 분들이 계시는듯 한데요.
동화처럼 그리시는 이수동 작가가 계시구요. 시각적으로 눈에 띄어서 그런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다 잘 아는것도 아닌 상태에서 다른 작가분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것은 예의가 아닌듯 합니다.

저는 마티에르가 있는 작업을 개인적으로 선호 하기에 나이프를 주로 사용합니다.가끔 붓대신 손가락을 이용 하기도 하구요, 겹을 이루며 색들이 배색 되어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붓질로 빠르게 작업 할때엔 느낄수 없는 중후한 이미지가 나옵니다.
중첩을 하는것은 시간과 정성이 그만큼 필요한데요. 오래전 부터 사용하고 있어 아크릴의 특성을 잘 숙지 하고 이를 잘 활용 하여 수성 임에도 유성 같은 느낌을 가질수 있는것이 특징 입니다.
한지나 모래 기타 혼합재료를 이용 하여 두께감이나 입체감을 느낄수 있는 작업합니다

전시 활동을 활발히 하시고 계신데, 올해 전시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10월 3일10월7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미술시장인 키아프에 참여를 하고요
11월1일부터~15일까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 선 미술관(이응노 화백 기년관)에서 초대전이 있습니다. 이곳은 수덕사에서 운영 하는곳이기도 하고, 제 고향 부근인데 제가 고향을 일찍 떠나왔기에 3년전 예산 출신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를 한것을 빼고는 이번 전시가 고향에서 처음으로 열게되는개인전 이어서 의미가 큽니다.

아직 결정 되지는 않았지만 6월에 열리는 부산 국제 화랑아트페어에서 조직위원회에서 전시 의뢰가 들어와 서로 검토를 진행중인 상태 입니다.
5월 인사동에서 한국 여성 작가회 정기전 및 9월 서초미술협회 정기전, 11월 바람의 눈 사진전 정기전과 그림과 사진과 시를 어우르는 출판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원고와 사진 그림을 정리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론 작업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이에 더해 사진을 체계화한 작업을 고민하고 있으며 국내엔 키아프 화랑 미술제 등에 참여하고 해외 전시는 최소 한군데 이상을 전시를 하며 꼭 참석하여 사진여행을 겸하려 합니다. 2018년~2019년에는 파리나 미국 중에서 전시를 타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도 많이 하고 그림을 그리고 또 시 작업을 통해 지속적인 출판을 하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섬유미술을 전공한 딸아이와의 공동 전시와 가구 디자인 상품 디자인을 전공한 조카들과 시각 디자이너에서 전업주부를 하며 보테니컬 아트를 하는 동생과 함께하는 패밀리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김화백님의 그림도 좋지만 사진 역시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그림과 사진의 차이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사진활동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요? 또 독자와 나누시고 싶은 다른 말씀은?

-두 작업 모두 하면 할수록 빠져 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듯 합니다. 사진이 기계를 통해 물상에 생각이나 사유를 입히는 것이라면 그림은 프레임 대신 캔버스에 내가 느끼는 감동과 감성을 믈감이나 기타재료를 이용해 온전히 혼자 내가 작업할수 있음이 사진과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전시는 자주 하는 편인데 어느날 문득 다가온 친구의 죽음 앞에서 문득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흐가 테오에게 편지를 썼지요?

“타다르궁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은 별까지 갈수 없다”.

자작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 신령과 대화를 나누며 종내는 별까지 이르는것이 한 생이라면 건강이 허락 할때 까지 즐겁게 작업을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는 여행을 많이 다닌편은 아니어서 몇년전부터 조금씩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자주 다니려 합니다.
전시를 겸한 여행을 우선으로 하구요, 작업이 않될 때에는 카메라 덜렁 메고 사진 여행을 하다가 소소한것도 행복함으로 다가올 즈음 다시 돌아와 작업을 하는것은 뻬놀수 없는 행복함입니다.

그림을 그릴수 있고 사진을 할수 있고 시시한 시를 쓸수 있어 절대 고독앞에서도 행복한 저는 작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연화-

인터뷰: 김연화 화백, 이정찬 미디어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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