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뭉크가 살던 파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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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에는 에드바르드 뭉크의 어지러운 물결이 살고 있다.

  푸른 잎사귀 우거진 그 집은 문이 닫혀 있을 때 온갖 생각을 인테리어 한다
호기심 많은 창을 남쪽으로 내고 그 창으로 달빛을 불러들여 한 생을 은유와  사색의 빛깔로 스케치 한다
그러면 한 소녀가 물방울무늬 레이스가 달린 추억을 목에 걸고 우아하게 시를 쓰기도 하고, 밤하늘에 아름다운 선율을 촘촘하게 수(繡)놓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문을 클릭하면 음악은 죽고 흐릿한 실내등이 졸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우울한 낯빛으로 커튼을 드리우고 있다 맘 속 누군가를 차지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거무스름하게 키우고 있는, 창을 확대하면 함부로 풀어헤친 낱말들이, 흘러내리는 생각의 곡선이, 펑퍼짐한 침대가 누워 있다.

 다시 눈을 감으면 밥 짓는 향기가 있고, 한 여자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그 집은 소라껍질 속에 있다.

  한석호 시집 『이슬의 지문』中에서

-인간의 삶은 그 방식이 규격화되어 있지 않다. 대개는 성장기에 부딪힌 일련의 상황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지배되거나 그와 비슷한 경향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차이는 있지만 인격이나 자아가 형성되는 유년기에 겪은 사건들이 특히 영향을 끼치는데, 문학이나 예술적 DNA를 갖고 태어난 인간들은 훨씬 큰 영향을 받아 일반화나 정형화와 더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뭉크는 노르웨이 출생 화가로, 어릴 때 부모와 동생이 죽는 아픔을 겪었다. 때문에 그는 평생 공포와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절규」와「죽음의 방」과 같은 작품을 낳았다.

이는 인위적으로 공포와 불안을 가공한 것이 아니라, 실존의 고통이 주는 심리적 감정을 그대로 화폭으로 옮겨 형상화한 것으로, 화가는 자신의 공포를 그대로 응시함으로써 오히려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위의 시 「에드바르드 뭉크가 살던 파도의 집」은 시인의 지난 삶 또한 결코 평안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 없이 묻게 되는실존에 대한 자문과, 세상이라는 파도와 부딪히면서 겪게 된 불안의 요인들, 관계라는 등식에서 겪는 갈등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을 뭉크의 이름을 빌려 고백하고 있다.

다만 뭉크의 불안하고 두려운 컬러가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을 빌려오고, 그것들에 고즈넉하고 따스한 옷을 입혀주는 방식이다.

한석호 시인

2007년 문학사상 등단
2008년 2010년 젊은시인 선정
시집 『이슬의 지문』, 『먼 바다로 흘러간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