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가 달을 따라 걷다(禿子跟著月亮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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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절정의 대만 정치인韓國瑜, 사진:페이스북

(미디어원=박상후 칼럼니스트) 타이완 중간 선거에서 국민당이 압승한 것을 두고 현지에서는 뤼디볜란톈(綠地變藍天)이란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 불과 몇 년 전 민진당을 상징하는 녹색지역이 국민당을 나타내는 파란색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킨 것은 한류(韓流)다. K-Pop의 한류가 아닌 국민당의 까오슝(高雄)시장 후보 한궈위(韓國瑜)의 초절정인기가 북상하면서 국민당이 압승한 것이다.

그래서 타이완 매체들은 이번 선거를 대머리가 달을 따라 걸었고(禿子跟著月亮走) 국민당은 대머리를 따라 걸었다(國民黨跟著禿子走)고 한다. 57년생인 한귀위는 대머리로 언변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막힘이 없다. 예능감각도 출중해 자신이 대머리인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했다.

선거 유세과정에서 부인을 동반하고 나온 한궈위는 자신이 달처럼 빛나는 대머리라면서 지지자들과 함께 덩리쥔의 유에량따이뱌오워더신(月亮代表我的心)을 열창한다. 그러다 가사중에 “가볍게 키스한다”(轻轻的一个吻)는 대목이 나오자 부인에게 키스를 하기도 했다.

한궈위는 농수산물 유통시장인 타이베이농산유통공사(臺北農產運銷公司)에서 총경리까지 지내 농정에 아주 해박한 인물이다. 이번에 취임식 전날 이곳에서 밤을 샌다고 해서 지지자들이 대거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타이완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그는 농산물시장에 근무하면서 경매사들을 타이완 전국의 농가에 보내 농민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작물을 생산하는지를 견학하도록 한 뒤 농민들의 피땀을 생각해 포장, 라벨링을 개선하도록 하는 등의 일화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채소 파는 남자 마이차이랑(賣菜郎)이다.

그는 차이잉원 총통의 선거당시 내세운 공약에 주목했다. 차이잉원은 단호한 연금개혁, 단호한 탈 원전, 단호한 민주개혁, 타이완주권수호, 감세와 봉급인상을 통한 민생안정 등을 내세웠다. 한궈위는 차이잉원의 지지계층을 국민당을 혐오하는 이들과 타이완독립을 지지하는 이, 민생을 중시하는 이등 세 가지로 분석했다.

그리고 자신은 정치투쟁에서 벗어나 경제를 중시하겠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정치는 타이베이에 주고 까오슝을 포함한 타이완 남부는 경제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 전략이 주효했다.

한궈위는 자신이 젊었을 때 실업의 고통을 겪은 바 있다면서 까오슝의 경제 발전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마잉쥬 총통시절 대륙과 맺은 하나의 중국 원칙인 9.2공식(九二共識)을 인정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까오슝은 산(山)도 물(水)도 공항, 항만도 있는 천혜의 관광지인데 왜 중국을 포함한 해외관광객은 타이완 북부 위주의 여행을 하는가 라고 그는 반문한다.

사진:페이스북

중국의 타이완 관련 부서인 궈타이반(國台辦)은 반색했다. 중국은 선거전부터 사이버 댓글부대를 투입해 한궈위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의 한궈위 관련 트래픽이 급증했다. 물론 한궈위가 승리한 것은 스스로의 역량과 선거전략 덕분이지만 그가 당선되기를 희망한 중국의 지원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궈타이반은 이미 한궈위가 9.2공식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이미 대륙의 관광시찰단이 까오슝에 파견됐으며 현지 관광산업이 크게 부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궈위는 관광객이 대륙에서 오든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오든 관광객 유치가 까오슝이 살 길 이라는 입장이다.

한궈위는 친중성향의 국민당 소속이긴 하지만 사상적으로는 중립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까오슝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대륙을 포함한 해외로 나간 첨단 기업들을 까오슝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타이완 대기업 10개를 까오슝에 유치하겠다고 했는데 이미 여러 개 기업이 투자의사를 밝혔다. 특히 당선직후 타이완의 최대 거부인 폭스콘의 궈타이밍(郭台铭)회장과 3시간동안 이나 전화통화를 하고 까오슝 공장 설립을 논의했다.

한궈위는 어느 정권이든 집권 중반이 되면 개혁의 피로도가 누적된다는 점을 아주 정확히 간파했다. 동성애 합법화나 탈 원전 같은 PC(Political Correctness)적 색채도 가지고 있는 차이잉원에 실망한 유권자의 심리까지도 파악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정한 승자는 타이완 독립을 좌절시킨 중국이라 분석하는 이들도 많다. 반면 국민당의 승리는 전적으로 한류(韓流)즉, 한궈위 돌풍 덕분이며 민생과 거리가 있는 민진당의 정책에 국민들이 피로를 느낀데 따른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타당하다. 타이완의 정치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다양하고 역사적으로도 아주 복잡해 일도양단식으로 잘라서 결론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참고) 까오슝의 유래
까오슝은 원래 마카다오(馬卡道)족이란 원주민이 살던 곳이다. 이들은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시가 있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쳤는데 이를 마카다오족은 Takao라고 했다. 나중에 한족이 타이완에 들어오면서 이를 소리나는것과 비슷하게 따거우(打狗)라 표기했다.

그러다 타이완을 통치한 일본인들이 따거우 즉 개를 잡는다는 표기는 저속하다고 여겨 일본한자 표기인 타카(高たか), 오雄(お)의 두 글자로 조합한 것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