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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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이고, 간혹 만장을 적은 비단이라도 날라 올지도 모르는 행렬이 오면, 나의 발걸음에는 봉분의 하관이 다리 가랑이 사이로 스며들기도 했다. 밝음 속에서는 충분한 사고의 영역도 어둠에서는 혼잡한 이미지를 낳는 법이다.

행여 내가 걸어가며 꿈꾸는 공간에서 세상에 태어나 내가 아직 보지 못한 환상으로 별들 사이로 사랑이 내린다면, 나는 내 가랑이 사이로 스며드는 만장의 하관을 껴안고 그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몽상과도 같은 내 감각의 아름다움이 단순한 추억으로서가 아닌 아름다움으로 살아 내 삶의 즐거움을 덮칠 때, 이 고요한 밤의 세계를 외롭게 걸어가는 나의 등 뒤로도 교교한 달빛은 황홀한 몽정처럼 흘렀다.

달거리를 거른 중년 여인의 아련한 팔다리 같이 무수히 상처 입은 감각으로 작은 촛불이 몽상을 시작했을 때, 만장의 시간도 도저히 그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감성 속으로는 우주의 그 어떤 물질보다 강렬한 사랑의 도그마가 어둠 속의 나를 구원하려 하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인간의 행위라면, 몽상을 꿈꾸는 우리의 시인들에게서 언어는 마치 미생물의 분해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한 권의 낡은 책에서 얻은 지혜의 이미지는 그대로 고요의 봉분 앞에서 박제될 지도 모른다.

어둠의 불꽃은 두 개의 이미지를 낳는다. 하나는 희게 빛을 내며 별들이 소리를 내는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고 푸른 타나토스적 이미지로 모든 감성을 촛불의 파란 뿌리처럼 핥아 먹는 생의 침식 같은 것이다.

필요한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 곳에 설령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제공하는 사랑의 촛불이 밝혀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고요의 밤에 밝음의 해법을 찾아가는 나의 가랑이 사이를 파고드는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촛불만으로는 부족하여 관솔불이나 램프, 또는 칸델라 불꽃에서 이글거리는 관능을 환상적 몽정처럼 인식한다 해도, 어둠의 불꽃이 뿌려놓은 두 개의 이미지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에 머문 상처와 만장에 쓰여진 말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는 가슴 안에 어둠을 담는다.

부드럽고 순수한 고요의 침묵은 두 이미지의 어둠의 불꽃을 삼키며, 내가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랑으로 몽상의 시를 특별한 운명처럼 탄생시킬 것이므로.

미디어원=박철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