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너는 누구냐?” – 명품 와인의 메카 ‘보르도(Bordeaux)와 와인’(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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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너는 누구냐? 보르도 와인 개요 및  역사

(미디어원=김원하 기자) 국내 와인 시장에서 프랑스는 와인 종주국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보르도 지방의 메독, 쌩떼밀리용의 레드와인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와인 애호가들은 뽀이약, 마르고, 뽀므롤, 쏘테른 같은 명품 산지 와인을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와인하면 프랑스, 특히 보르도를 연상하는 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세계 어느 곳이 든 보르도는 와인과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보르도가 전 세계 와인 생산량의 1.5%를 차지하고 유럽 국가의 와인 산지 중에서 최대 규모를 갖고 있으며, 또한 6,800여개 이상의 샤또와 36개의 공동 와인생산조합, 300개 이상의 와인 도매상인 네고씨앙들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와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큰 특징 때문이다. ‘와인의 메카’라 일컬어지는 보르도 와인의 세계를 2회에 거쳐 소개하고자 한다.

보르도에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한 이 후, 천 년이 넘도록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가장 큰 지방으로 보르도가 지목되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매년 와인을 생산하는 다양한 떼루아의 결과로서 와인 생산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지롱드강과 두 개 지류의 강의 영향으로 자갈, 모래, 석회질 토양 등이며 배수가 잘 되어 양조용 포도 재배에 최적의 떼루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북위45도의 위치는 온화한 기후를 형성하여 와인의 풍부한 맛과 색깔을 보장해주고 있다.

보르도의 성공을 가져온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다양한 떼루아에 놀라우리만큼 잘 적응한 보르도 지방 사람들의 이용 능력을 들 수 있다. 보르도 와인의 풍요로움과 60개의 원산지 명칭은 포도 재배자들이 수 세기 전부터 갖고 있던 포도 재배 경험과 여러 포도 품종을 다룰 줄 아는 노하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보르도 포도 재배자들은 이 지방의 자연에서 최고의 산물로 탄생하도록 끊임 없이 와인 품질 개선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이들은 전 세계에서 와인의 예술을 선도하는 사람들로 꼽히고 있다.

이 예술은 보르도 지방에서 한결같이 사용하는 블렌딩의 과학적 기술이며 제각기 맛이 일품인 서로 다른 품종을 각 샤또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정해진 범위 비율을 맞춰서 미묘하게 섞는 기술이다. 와인마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배합하여 개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작업이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와인들은 과일, 토양, 나무향 등의 예상할 수 없는 향으로부터 사냥짐승, 향신료, 꿀, 열대과일의 놀라운 향과 맛이 나타나게 된다.

와인 애호가들은 일상적인 보르도 와인부터 감탄을 자아내는 그랑 크뤼까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와 품질로 만족하고 있다. 이처럼 보르도를 말할 때 와인과 분리하여 설명하기 어려우며 전 세계인들에게 보르도 하면 와인을 연상시키는 것은 보르도인들의 역사와 생활은 와인을 위한 것이었고 이를 발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르도와 와인을 동의어로 인식되게 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보르도와 보르도 와인의 세계에서 먼저 역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포도 재배와 관련한 떼루아, 품종, 양조 및 생산 지역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보르도 와인의 역사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르도 포도밭 출현은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토착민들이 까베르네 포도품종의 조상인 추위에 가장 잘 이겨내는 포도 품종을 심으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4세기에는 시인이며 포도원 소유주였던 로마 집정관 오존(Ausone)이 뷔르디갈라
(Burdigala)라고 부르는 보르도 와인의 첫 외교사절 역할을 했다. 그후 보르도 와인이 번영하기 시작한 시점은 1152년 보르도 지방 옛 이름인 아끼뗀느(Aquitaine)공국의 공작 딸인 알리에노르(Aliénor)가 장차 영국의 왕이 될 앙리 플랑타즈네(Henri Plantagenêt)와 결혼하면서이다. 그때부터 많은 교역이 시작되는데 영국은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선명한 색상을 갖고 있다고 하여 끌라레(Claret)라 부르고 수입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새로운 고객으로 출현하면서 교역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프랑스 남서 지방산 와인의 중요한 구매자였을 뿐 아니라 상업적, 기술적 혁신으로 구매를 촉진시켰다. 18세기에 영국은 보르도 와인을 예전처럼 많이 수입하지 않았지만, 런던의 상류층들이 찾는 고품질의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에 처음으로 와인병에마개를 밀봉 하여 유통하게 된다.

1855년, 지롱드 지방내 메독, 쏘테른느 그리고 그라브 지역의 샤또 오브리옹(Haut-Brion)이 ‘그랑 크뤼 클라쎄’ 등급이 매겨지는 영광도 갖게 된다. 그 후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는 진딧물인 필록세라(Phylloxéra)가 보르도에서 발견되어 1882년에는 전 지역에 퍼져 모든 품종들에서 무차별하게 나타났고, 많은 피해와 함께 결국 포도원들은 해충에 강한 미국 품종의 뿌리에 보르도 포도품종을 접목시키는 처방책의 발견으로 재건하게 된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필록세라의 위기로 와인의 품귀현상이 일어나자 와인 밀조가 성행하고 가격이 폭락하는 등 새로운 위기를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롱드인들은 와인 원산지에 대한 정부 법령 수립에 참여하여AOC(원산지 통제 명칭)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농가의 숫자는 줄어든 반면 재배 면적은 확장되었고 기계화 및 전문화되어 갔다. 또한 청포도에서 적포도 품종 재배로 전환되어가기 시작했으며, 오크통 숙성과 샤또에서 병입이 일반화되는 등 와인 품질 향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세계 경제 성장에 따른 전세계 수요 증가로 와인 생산 역시 비약적인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도 보르도는 최고 명성의 와인 생산지 일 뿐 아니라 전세계 와인 비지니스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격년제로 개최되는 보르도 와인 전시회인 빈엑스포(VINEXPO)는 그 증거이며 모델이다. 또한 1999년 유네스코(UNESCO)는 쌩떼밀리용 마을을 포도재배에 관련하여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였고, 보르도는 와인을 공부하고자 하는 전세계 학생들에게 교육 중심지가 되고 있다.

보르도 와인 성공의 열쇠-와인생산과 유통
보르도 지방의 천혜적인 자연 조건과 보르도 사람들의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보르도 와인을 최고 와인의 상징이 되게한 것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보르도 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로 보르도가 항구라는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상업, 특히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보르도에서는 국내시장을 넘어 무한한 시장 가능성이 있는 국제시장으로 진출하였다.

보르도에서 와인은 다양한 직업을 창출한 지배적인 산업이다. 와인과 관련된 중요한 두 직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샤또(Chateau)라고 부르는 포도재배업자와 와인 도매와 수출하는 네고씨앙(Negociant)이다. 또 하나의 직업인 와인 중개인(Courtier)의 매개로하여 포도 재배업자는 다양하고 전통성 있는 와인을 생산하고 네고씨앙은 소비자들에게 그 와인들을 유통하는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와인 생산과 판매를 분리할 수 없는 이 커플은 보르도 지방이 이룩한 지난 세기의 성공을 설명하는 비밀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업무 특성과 기능을 완벽하게 조화시키고 활용하기 위해 함께 모여 와인의 품질 개선, 홍보와 시장개척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생산하여 유통하는 전략으로 보르도 와인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료 및 사진제공: 한관규원장/ 와인경영연구원, ‘보르도와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