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라 레퍼블리카(la repubblica)’는 ‘잊힌 10년 중 최고(10×10: il meglio di un decennio già dimenticato)’란 주제로 책을 선정하여 발표했고, 소설 분야 10선에 문예출판사가 2019년 12월에 출간한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 포함되었다.
‘라 레퍼블리카’는 최고의 책들을 연결하는 것은 뿌리에 대한 갈망, 집단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와 같은 주제들이었다고 밝혔고,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2018년을 대표하는 책으로 선정되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이탈리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캄피엘로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유수의 문학상 8개를 휩쓴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끌려간 실제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히틀러의 시식가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실존인물 마고 뵐크(Margot Wölk)의 고백을 바탕으로 하였다.
마고 뵐크는 1941년 24세의 나이에 자신을 포함하여 총 15명의 여성과 함께 히틀러의 음식을 맛보는 일을 하였으며, 이들 중 유일한 생존자로 2013년에 독일 언론 슈피겔을 통해 지난 일을 고백하였다. 작가 로셀로 포스토리노는 그 기록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치에 순응하는 인간의 생존 욕구를 발견하고,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을 그린다.
주인공 로자 자우어는 작가인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시점이 반영된 인물이다. 작가는 자신의 본명인 ‘로자’로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고 성은 ‘자우어’로 지었는데, ‘자우어(Sauer)’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괴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이름처럼 소설 속 로자는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원죄의식을 갖고 있다.
로자는 나치 추종자가 아니었으나 나치 체제하에서 살아남았고, 히틀러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친위대 장교 치글러와 사랑에 빠졌다. 로자는 친위대 장교 치글러로부터 평범한 삶을 되찾고 싶어 했지만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치글러와의 관계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설 속 로자는 나치를 반대했던 아버지의 환영이 말하는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은 네게도 있는 것”, “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한 면죄부가 없다”는 말에 고뇌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열악한 상황에 처했던 독일 국민들은 사고하기를 포기한 채 ‘폭민’이 되었고, 히틀러는 이들의 틈에 국가사회주의를 심는다. 그리고 많은 독일인은 치글러처럼 나치를 위해,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유대인을 혐오하고 소각한다. 로자의 친구가 되어준 마리아 남작 부인은 “히틀러 아니면 스탈린인데 스탈린을 선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치글러 또한 “어쩔 수 없었다”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한 아이히만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악의 평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전쟁 당시 큰 힘에 억눌려 어쩔 수 없이 히틀러에 봉사해야만 했던 평범한 독일인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은 이 소설의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이 소설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소설의 주인공 로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끊임없이 반문한다. 평범한 약자로 태어난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로자처럼 싫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삶을 바꿀 기회는 로자가 아버지의 환영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실존 인물이자 소설의 주인공 로자로 태어난 아흔여섯의 마고 뵐크는 70년 동안 비밀을 지켰음에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았을까. 나치가 아니었으나 나치가 되어야만 했던 로자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광기의 시대 안에서 무엇이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인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