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넘어 초월로- Beyond the Roa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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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예술의 관계

 

예술은 원시 고대부터, 아니 인간이 지상에 출현한 이후로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왔다. 기원전 4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하라 사막의 조다(Djado) 문명을 보면 성채가 있고 절벽에는 기린 등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 건축물, 아즈텍의 마야 문명에 나타나는 기하학 문양 등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학자들은 강력한 왕국이 등장하여 노예들을 데려다 노역을 통해 건축물을 축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인류보다 문명이 발전한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 월등한 과학으로 건립했다는 설, 지구에 이전 인류가 발전한 문명을 세우고 살다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멸망하고 다시 인류가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에 의한 결과로 문명의 성쇠를 분석하였지만, 외계인설, 노아 시대의 홍수로 인한 멸망설, 운석의 충돌에 의한 문명 멸망설, 아틀라스 대륙처럼 지각의 변동으로 인한 문명의 침하설 등도 인기 있다.

 

인도의 고대 문헌인 라마야나에 외계인이 타고 다니는 비행접시와 원자폭탄, 미사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기준으로 인간의 역사를 재단하기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직관을 기초로 하는 초월적인 영적 능력 형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길 위의 예술과 초월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제한된 세상과 교류를 하면서 성장하고 내면을 형성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하나의 개체, 하나의 통계 숫자로 표기되는 인간은 숫자가 많아질수록 점차로 문제가 복잡하게 된다. 의식주의 해결과 생존 문제가 난관에 봉착하기 쉽다. 더구나 가뭄, 홍수, 추위, 적군 침입 등의 특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생존과 멸절의 양극단에 서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적 제한이나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예술가들은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모색하고 만들며 이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존재로의 가능성을 밝혀주고 싶기 때문이다. 반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사회에서 추방을 당하는 일도 생겨나고, 권력자의 허위를 주장하다가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어느 시기에 이르면 비판적인 그의 시각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차원을 열기도 한다.

인생을 하나의 길에 비유한다면 예술가들은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발견하며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케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Beyond the Road 서울 전시

 

 

여의도 현대서울에서 열리는 Beyond the Road 서울 전시는 이러한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이 전시는 예술간의 영역을 파괴하고 협업하는 콜라보레이션 방법을 사용하며 나아가 전시물과 관람자가 상호 교감하는 이머징을 핵심적인 주제로 한다. 작품에 대한 느낌과 평가는 개개인이 모두 다를 수 있으며 여기서 받는 영향 또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전시실 앞에서

갤러리에서의 이러한 방법은 인간의 오감을 모두 열어 소리, 색깔, 향기, 영상 등을 따라가며 자신의 내면을 열고 세상과 우주를 향해 소통하며 달려가게 해준다.

마치 줌을 통하여 회의를 하거나 SNS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하여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하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특징을 갤러리에서 구현하는 형식인 셈이다.

이 전시가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 인기를 끌었다는데 이러한 전시를 서울에서 유치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계 문화의 첨단에 서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하여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예술의 흐름이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전시의 구성적 특징

 

 

이 전시의 구성상 특징은 관람자가 소리를 들으면서 각 전시실에 들러 다양한 예술가들이 언클(UNKLE) 의 음악에 따라 영감으로 제작한 전시물을 보면서 나만의 독특한 감상을 하도록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어느 방에서는 기억과 사랑의 향수를 맡기도 하고 어느 방에서는 이미 화석이 된 우주의 나무를 마주한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건조한 바람과 시간의 마술 앞에서 인생의 흔적은 파편이 되어 사라지고 낡고 허름한 흔적만 남는다.

우리는 이러한 무의미 앞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그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한가를 자문하게 된다.

 

얼굴없는 기사 앞에서 포즈를 잡아보았다

소리를 들으면서 변하는 색채 속을 거닐다가 전시물을 만나면서 관람자는 자신의 누추하고 허름한 과거로 돌아가 잊혀졌던 기억을 꺼내든다. 영상을 보면서 누추하고 허름한 티끌 같은 생명인 나자신이 우주에 단 하나뿐인 보석과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넓고 광대한 우주와 파괴되고 사라지는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노래를 들으며 걷고 말하고 노래하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타인과 타자에 의해 설정되어 바라만 보던 자신이 사실 우주의 주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는 순간 관람자는 너무나 낯설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소중한 자신을 너무 홀대했기에, 때로는 타인과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버려도 되는 헌신짝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전혀 주체가 없던 자신이 단단한 껍질을 벗고 알몸으로 자신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특별 제작한 호랑이 그림

 

어쩌면 이 모습은 부정하고 싶은 자신, 만나고 싶지 않은 자신일지도 모른다. 속담에도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알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모르고 사는 방관자로서의 삶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축소되고 감춰진 자아, 비밀로 남아있는 자아를 원한다. ‘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는 그 때문에 독배를 마시지 않았는가. 예술가는 이러한 한계에 도전하고 이를 파괴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모든 예술가는 인디언이며 카우보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자연과 벗하며 생명을 존중하며 살아가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방식, 산을 오르고 벌판을 달리며 진정한 자아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이다.

 

Art $ C 박 호남/ 문학박사, 한국공연예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