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톱체홉의 연극 ‘세자매‘,’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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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 안톤 체홉 희곡을 가장 명징하게 해석하여 무대화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기호 연출이 연극 ‘세 자매’를 2023년 07월19일(수)부터 07월 23일(일) 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 올린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12일부터 20일까지 부산의 예노소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김문홍 연극평론가의 리뷰에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안톤 체홉의 ‘세 자매’는 러시아의 어느 지방 도시에 사는 세 자매가 겪는 꿈과 현실의 괴리 속 인생의 속성을 그려낸 작품이다. 실제로는 그곳을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면서 언제나 모스크바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세 자매의 모습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을 희구하며 현실을 견뎌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안톤 체홉이 1900년 집필한 ‘세 자매’는 이듬해 모스크바예술극장에 초연됐고, ‘갈매기’ ‘바냐삼촌’ ‘벚꽃동산’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체홉은 ‘세 자매’로 1902년 그리보예도프상을 받았다.

희곡은 포병 여단이 주둔하는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러시아의 나약하고 무기력한 지식인을 비판하고 제정 러시아의 생기 없는 현실과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을 묘사하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러시아 중류층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극 내용은 학교 선생인 올가, 불행한 결혼을 한 마샤, 순수한 막내 이리나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모스크바를 그리워하고, 그중 올가와 이리나는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꿈에 젖어있다. 하지만 그들을 품은 군대가 다른 도시로 이주하면서 그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상을 좇으며 현실을 견디는 우리들의 인생을 속속들이 은유로 묘사한다.

세 자매 이야기는 기쁨이 넘치는 봄에 시작해 멜랑꼴리한 가을에 막을 내린다. 깊게 사유하는 모습을 그리며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준다. 세 자매는 끝까지 행복하진 않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며 사는 게 중요하단 걸 보여준다. 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조금만 있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 알게 될 거야…”라는 대사로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연출을 맡은 이기호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는 “‘세 자매’는 쉬이 변해가는 인생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상주의자는 진실을 보지 않고 환상을 보지만, 세 자매는 마침내 진실을 보게 된다”며 “앞만 보며 살아가는 관객들이 잠시 멈춰서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비춰보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작품을 준비한 극연구집단 시나위는 1997년 창단한 부산 대표 극단이다. 창단 26주년을 맞아 명작시리즈로 ‘세 자매’를 제작했다. 양진철, 우명희, 박창화, 이동규, 이경진, 김가은, 황정인, 김건, 김시아, 이한성, 서선택, 김승환, 양진우, 이선준 배우 등이 출연한다.

이기호 연출가는 수년간 안톤 체홉 희곡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왔다. ‘갈매기’, ‘벚꽃동산’에 이어서 ‘세 자매’까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칼 융의 분석심리학으로 해석한 공연을 선보여왔다. ‘세 자매’ 공연에서는 체홉의 인생철학과 연극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안톤 체홉은 연극을 통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기쁨으로 시작해 깊은 사유로 들어가는 사이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며 무대 분위기를 차차 고조시켜 가면서 인생이라는 시(詩)를 써 내려간다.

체홉의 희곡은 덧없는 인생의 찰나에서 발견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시적 사실주의 형식이다. 행복을 향한 헛된 탐색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한다. 체홉의 인물들은 주역도 조역도 존재하지 않는 집단 주인공 체계로서 각자 자신만의 전기를 소유하며 심리적, 외형적 구체성과 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체홉의 인물들은 본질적으로 꾸밈이 없으면서도 모순덩어리 캐릭터들이다. 감정적, 정서적 약점을 드러내고, 정신의 조잡함도 그대로 노출된다. 그래서 체홉의 인물들은 친근하다. 체홉극을 즐기려면 이야기가 아닌 캐릭터에 집중해야 한다. 이기호 연출가의 연출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