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거리며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얼굴 생김새가 여러 나라 모습이었다. 분명 외모는 누가 봐도 라틴계, 백인, 아시아인이 섞여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했다. 외국인들은 50년 이상 나이차가 나도 서로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도 한국인과 다르다.
그들의 사연을 듣고보니 스페인 출신, 미국계, 일본 원주민이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스페인계 중년 여성은 일본 남자와 결혼해 45년 이상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다. 현재 국적이 일본이고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를 잘 한다. 그 여성처럼 일본 남자들이나 일본 여자들은 국제결혼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국제화 돼 있고 선진국답다.
일본인답게 “영등포에 있는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호테르’에 간다고 해 웃음이 나왔다. 일본인들은 받침이 있는 발음을 어려워 한다. 호텔을 ‘호테르’, 트럭을 ‘도라꾸’ 하는 식이다. 얼굴은 서양인 모습인데 영어는 일본식 발음이라서 재미있다. 다같이 서울역에서 탔으나 9호선으로 갈아타려 노량진역에서 먼저 내리며 “세 정거장 더 가 영등포역에서 내리라”고 설명해 줬다.
7명 모두 전철 안에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정이 많다. 오키나와에 꼭 여행을 오라고 했다. 스페인 출신 그 여성은 “한국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좋아서 벌써 네 번째 한국을 방문한 거다”라고 해 신기했다. 특히 간장게장과 순두부를 최고의 한국 음식으로 꼽았다. 일본인들은 간장 소스 문화권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장게장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누가 일본에 가서 음식으로 사업을 해 성공하고 싶으면 간장게장집을 하면 대박을 낼 수 있다.
현지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음식 사업으로 성공하는 이들이 많다. 인도 음식, 중동의 할랄 음식, 한국의 김치나 삼겹살로 거부가 되는 이들이 있다. 또는 한식 도시락 사업으로 성공한 사례가 나온다. 생막걸리 사업도 유망한 나라이다. 이번 일본 여행객들이 좋아한다고 한 순두부도 일본의 경우 해물 순두부 사업이 훨씬 더 유망하다.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이고 특별히 장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은 다민족이고 다국적 사람들과도 매우 조화롭게 살아간다. 역사적으로 한국보다 열린 사회였으니 한국인과 다른 게 많다.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소통도 잘 했다. 할머니 자격으로 온 스페인계 여성은 며칠 후 일본으로 돌아간단다. 두 여학생은 3일쯤 서울 여행을 하다가 다음 행선지로 오산 험프리 캠프, 미군 부대로 갈 거라고 했다. 보이스카우트 행사가 있다고 한다.
여행객 7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는 이번에 한국 여행이 처음이라며 천진하게 웃었다. 다음에 또 올 거냐고 물었더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의 어머니는 일본인, 아빠가 미국 사람이다. 그동안 해외나 국내에서 본 국제결혼 커플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다. 21세기이니 지구촌은 코즈모폴리탄 시대가 가속화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세계 시민답게 살아가고 있다.
울산역에서 산 호두과자 한 상자를 건네줬다. 작은 상자여서 10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견과류나 팥을 좋아하는 걸 경험상 안다. ‘호텔에 가서 쉴 때 커피나 차와 먹으라’고 하자 감동스러워 했다.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현지인들의 작은 호의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게 오래 손을 흔들어준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대략 10월쯤 가게 될 일본, 그들의 환한 미소가 떠오를 것 같다.
점점 한국인과 외국인의 국제결혼이 늘고 있다.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45년 전 한국 남자가 스페인 여성과 결혼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지인의 딸이 영국에 유학을 가서 런던에 사는 대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지인의 딸이 외국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지인은 “충격으로 머리가 띵해 6개월간 침묵하다가 마지못해 국제결혼을 허락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직도 보수적이고 닫힌 이들이 많다.
다른 지인의 딸이 호주 남학생과 유학 중 만나 연애를 하자 딸의 아버지가 극렬히 반대해 헤어졌다. 또다른 지인은 나이지리아 영어 강사와 눈이 맞아 임신을 하자 한국인 딸의 어머니가 인연을 끊었다. “백인 사위도 안 되는데 흑인이라서 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사랑하는 이들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일본인들은 사랑도 과감하다.
일본인 하루코 상은 젊은 날 영국에 유학갔다가 아버지뻘과 결혼했다. 이집트 사업가 ‘파리드’ 는 일본 여성과 펜팔로 사귀다가 만난 지 3일만에 결혼했다. 아담이라고 이름을 지은 아들도 낳고 깨가 쏟아지게 잘 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나라지만 알고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7명의 여행객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체리 이연실/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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