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이귀연 기자) 최근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속도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시류에서 벗어나, 여행의 매순간을 음미하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여행은 단지 사진이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닌,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의 길’. 그 길이 없었다면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소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
소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다. 연금술사는 1987년 출간 후 120여 나라에서 번역되어, 현재 2,0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후로도 내놓는 작품들마다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막연한 희망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핀잔만 받기 일쑤였다. 부모조차 그의 꿈을 외면하고, 그가 엔지니어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그의 꿈은 잊혀 가는 듯 했고, 꿈을 위한 노력보다는 현실의 삶에 안주하게 된다.
커다란 음반회사의 잘 나가는 중역이었던 코엘료였지만, 자신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방황했고, 현재 생활에 대한 회의와 좌절 끝에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을 마친 얼마 후 드디어 코엘료는 어릴적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작가의 길을 걷기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여행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삶이 바뀐 것이다. 꿈을 좇은 새로운 삶의 여정 끝에는 놀랄만한 성공과 영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 원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가 걸었던 길은 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의 길이다.
세계인의 성지(聖地)가 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스페인식 이름: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오늘날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그를 기린다.
중세부터 시작해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순례길에는 여러 방면의 길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도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인의 길다. 프랑스 남부 지방,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의 긴 길이다.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리는 이 길은 갈림길마다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껍데기와 노란 화살표가 친절히 길을 알려 주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마을마다 알베르게라 불리는 여행자 전용숙소가 마련돼 있어, 잠자리와 취사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 숙소 안에서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들과 만나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우호적인 마을사람들의 태도는 길을 걸을 때 큰 힘이 되어 준다. 순례를 한다는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돼,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기분 좋은 만남이 이어진다.
유구한 전통이 흐르는 순례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프랑스인의 길 초반에 만나는 어려움 중 하나인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넘는다면, 푸른색 파도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포도밭이 인상적인 라 리오하 주(州)에 당도한다. 스페인의 대표적 와인 생산지역에서 잠시 느긋하게 와인을 즐겨 보는 건, 다음 여정을 위한 활력소가 된다.
또한, 황금빛 밀밭이 드넓게 펼쳐진 대고원 메세타를 걷다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윽고 찾아오는 정신적인 고독감과 침묵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다만, 너무나 외롭게 느껴진다면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돌아보자. 앞서가는, 혹은 뒤따라오는 순례자들이 눈빛으로 말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올바른 길을 향하고 있으며, 결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지난 세월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옛 마을을 지나고, 마을마다 있는 고풍스런 성당에 들러 순례자를 위한 축복을 받는다면 도보여행이 한층 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성당은 낡았지만, 레온이나 부르고스, 산티아고 등 대도시의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곧이어 푸른 초지와 낮은 구릉이 나타나는데, 양떼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떠오른다. 실제 코엘료도 이 길을 걸으며 양치기 산티아고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양떼들과 대화를 나누던 산티아고가 되어 애정을 가지고 양떼들과 길을 걷고 나면, 이제 자그마한 도시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시에스타 시간’을 요구하게 될 만큼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 아래라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여행인 만큼 조금만 참으면, 곧 갈리시아 지역의 가늘고 촉촉한 비가 내려 얼마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걸어 울창한 숲길을 계속 걷다 보면, 마침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놀라운 환희와 감동의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산티아고의 길을 무사히 끝마쳤다면, 완주의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있다. 한 달여 동안 보고 느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또한, 도움을 받고 감사드려야 할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평생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이야기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희열의 눈물! 그것은 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만 흘릴 수 있는 무엇보다도 값진 눈물이다. 그 감정을 기억한다면 언제라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개인의 자유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다양하다.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지난 세월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과 후회들은 과감히 내려놓자. 이제는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 나갈 때다.
삶이 혼자 살아가는 고독한 싸움과 같다고 누가 말했던가. 곁에 서있는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의 따뜻한 시선을 고이 간직하고, 힘차게 앞을 향하자. 순례길 끝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한 코엘료처럼 말이다.
그는 말했다.
“때가 되면 누구나 길을 떠난다. 그 길 위에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자, 이제 가슴 속에만 품었던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한 길을 떠나자. 놀라운 환희와 감동의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팁
1. 출발: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피에드포르’로 간다. 그곳에서 순례자 전용 여권 ‘크레덴시알’을 만들고 시작한다.
2. 여름은 붐비니, 날씨가 좋은 4월과 5월, 9월과 10월을 이용하다. 겨울에는 문을 닫는 숙소가 많다.
3. 최대한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고, 13시 이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하자. 늦은 시간에는 알베르게(Albergue)가 만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4. 배낭은 8킬로 이내로 최대한 가볍게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