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정성민 칼럼니스트) 기초 상징자산의 가치회복이나 이미지훼손의 매니징 없이 미래의 승리를 도모하겠다는 것은 沙上樓閣이자 下石上臺가 될 수 있다.
중공의 모택동은 공7과3으로 평가 받는다. 천안문엔 여전히 그의 사진이 붙어있다. 등소평은 흑묘백묘를 들고나와 개혁개방과 수정사회주의 안착에 기여했다.
그것은 군중의 어리석음이나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미 험지로 내몰린 이를 두고 당해도 싸다느니 그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어라는 탓과 책임넘기기는 현상타개에 일응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과격한 언어를 구사하여 상징자산의 가치를 매도하여 아예 밟고 가자, 지워버리자는 것은 공감하지 않는 분들을 자극만 할 뿐이며 결국 분란을 일으키고 제살을 갉아먹는 결과로 귀결된다.
좌파들이 상징자산과 세력의 연원을 기를 쓰고 집요하게 음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들고나오는 적폐프레임이 그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설사 서로간 부정의와 불합리, 무례함에 분노를 느끼더라도, 다소간의 혹은 극한의 인식차이가 있더라도, 경솔한 언어로 의견과 입장이 다른 타방 전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은 장기 전략 판단의 미스다.
정히 그렇다면 자신들의 연원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인식기초가 되는 그 무언가를 집단자살로 지워낸 후 환골탈태하여, 자생자발적 순도높은 가치추종세력을 현실정치내 등장시켜 일반대중에 그 가치를 설득 전이시킬 수 있는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작금 현정권 최고실세의 행보를 보자.
자신과 자신들의 추종세력과 집단 연원에 대하여 Don’t Ask Don’t Tell, Neither Confirm Nor Deny이다. 그 어떤 공개의 장에서도 부정하지 않는다. 논점을 비틀어버릴 뿐이다. 숙달된 궤변 트레이닝의 성과다. 또한 내부집단에서는 다른 언어와 메시지를 사용한다. 그들 속에선 그것이 용인된다.
누가 뭐래도 정치는 현실이다. 아무리 욕을 하고 정파를 나눠 자기들끼린 죽이니 살리니 해도, 특정지역과 그들 연계세력의 투표심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가.
목적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용인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의기충만한 분들은 워낙 자신의 마음에 진솔하시기 때문에 속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쉽사리 마음의 타협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것을 서로 알아 존중하는 분도 계시고 일부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위와같은 진영간 성향차이로 인해 그냥 그 이슈를 묻고가자 이런 건 통하지 않지 싶다.
애초에 이 상징자산들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갈 수도 없다.
인식의 차이가 있는 분들은 서로 냉철하게 상징자산을 타자화하여 상황을 바라보자. 현실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진 거다. 다행히 아직은 승부를 볼 대목이 남았다.
대중의 의식이란 그 시점의 한판으로 결정지어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좌고우면하거나 일신 및 일부 정파의 이해에 매몰되어 잔술 써 의도적으로 배격하거나 이미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더이상 악화시키는 것은 무용하다.
‘난 달라’, ‘난 너희보다 우월해’라는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 그런 인간본유의 자기과시와 방어심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전달의 기술은 필요하겠다.
메신저의 진실된 마음도 중하다.
사안별로 변화되는 대중의식의 흐름에 자신의 언어와 그에 따른 공감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
나름 영향력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내뱉는 언어에 신중을 기하셔야 한다. 어렵사리 형성한 신뢰의 가치를 서로 무너트릴 필요는 없다.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 최소한 완화의 브릿지가 필요할 것이다.
다른 것을 떠나 한 사람의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첫걸음을 떼어보자.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 자체’를 우선시하자. 불분명한 게 있으면 분명 따져 짚고 넘어가자.
또 메시지 파급창구가 SNS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시지 전달의 대상 역시 동조집단에만 있지 않다.
깊이 고심하고 결속하여 공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선은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