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랜드사 2부 여행사 3부 항공사
멀티포지션을 수행하는 여행사 그들의 고뇌
엄밀히 말해 여행업계 큰 구도로 봤을 때 여행사는 랜드사와 항공사의 사이에서 여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업체라고 볼 수 있다. 즉 랜드사는 제조업체, 여행자는 소비자로 비유할 수 있고 여행사는 랜드사가 생산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백화점과 같은 역할이다.
산업전반에 만연한 업계 간 주종관계는 주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화주와 화물연대, 정유사와 주유소, 건설사와 철강업체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업계에서 여행사는 때로 ‘갑’으로 또 때로는 ‘을’의 역할을 수행한다.
여행사는 이러한 포지션적 특성으로 인해 큰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혹자는 여행업 부조리의 주범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 랜드사는 하청업체??
이러한 구조에서 키 역할을 하는 항공권은 업계를 뒤흔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항공사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대형 여행사에 항공권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중소여행사나 랜드사는 항공사에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사로부터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항공사는 항공권을 개별 구입자와 일일이 상대하기보다 대형여행사를 내세워 판매 창구를 일원화한다. 이로 인해 항공기 공석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안정적으로 재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항공사가 대형여행사에 더욱 많은 티켓을 몰아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일단 주도권을 쥔 대형 여행사는 랜드사를 맘껏 휘두룰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랜드사가 하소연하는 여행사 횡포의 첫 번째는 바로 지상비다.
중국을 전문으로 하는 A랜드사 소장은 “여행사가 현지에 나가 있는 랜드사에 지상비를 지불할 때 환율?시기 등을 입맛에 맞는데로 조정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여행자들로부터는 여행요금을 미리 받고, 랜드사에 지불할 땐 3개월 내지 6개월 단위로 정산하며 그동안 쌓인 현금을 주무른다는 것이다. 최근에야 신용카드 결제가 증가하면서 이런 사정은 많이 감소했지만 환율에 의한 지상비 축소는 여전하다.
일부 여행사의 성수기 항공권을 담보로 비수기 항공권 강제 판매도 도마에 올랐다. 성수기에 여행사로부터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비수기 모객에 실패한 항공기 좌석을 랜드사에 일괄 판매하는 것이다.
최근 모두투어에서는 협력업체와 화합을 통해 상생을 다짐하는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이러한 대형 여행사의 전향적인 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항간에서는 여행업계의 마인드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행사와 랜드사 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정책 변화와 같은 법적 규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랜드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계약서 양식은 여행사에 유리하도록 내용 자체 가 편향돼 있다”며 “이런 법적 문제부터 공정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둘의 관계는 앞으로도 공생관계로 발전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터넷으로 관례는 허물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행사와 랜드사의 관계는 전형적인 계약서상의 갑과 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항공사가 끼게 되면 여행사는 을의 입장에 서게 된다. 여행사의 칼자루로 여겨지는 항공권이 바로 항공사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국적기에 국한되는 사례다. 외항사나 저가항공사의 경우 여행사에 휘둘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행사가 항공사의 업무 중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은 예약, 발권 업무다.
고객이 직접 항공사를 찾아가 예약을 하고, 발권한다는 것은 항공사 직영 사무실의 수나 위치의 제한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주변에 쉽게 찾을 수 있는 인근 여행사에 항공권을 미리 판매하고 여행사는 판매분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수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여행자가 언제 어디서나 항공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격을 비교하고 예약과 발권마저 가능한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여행자와 항공사가 직접 거래가 가능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런 인프라의 변화는 여행사 수수료에 대한 인식도 바꿔놓기 시작했다.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여겨졌던 여행사 수수료가 항공사에겐 불필요한 지출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여행사에 위기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일부 여행사는 여행객을 대량으로 모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항공사에 항공권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가 이 부분에서 허물어진다.
일부 외항사 관계자들은 “대형 여행사의 경우 여행객을 무기로 항공사가 직판하는 항공권의 가격을 높게 책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있다”며 “이 때문에 항공사에서 직판하는 항공권의 가격이 여행사를 통해 구입하는 항공권 가격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유통과정의 중간단계를 없애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제품이 오히려 중간 단계 수수료가 포함되는 같은 제품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수수료를 폐지한 대한항공에 이어 일부 항공사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자 여행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것은 자명하다. 힘없는 외항사나 저가항공사들은 여행사 눈치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수수료 폐지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 여행사도 할 말은 있다
아직도 수많은 여행사가 항공사 커미션을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데 이들 여행사들이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은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항공사들이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수많은 여행사들이 도태되고 메이저 여행사마저 파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항공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사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고 지적하며 “이제 와서 살 궁리는 스스로 하라는 식의 태도는 여행업계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랜드사와의 관계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여행사 탓으로만 매도하는 일부 언론의 시각에도 불편함을 드러냈다.
여행사 관계자는 “현지 관광지에 대한 아무런 전문성 없이 그저 직원 한 명, 전화기와 팩스만으로 일관하는 일부 랜드사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한 시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단지 업계 특성상 드러나는 여행사의 부조리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도 “워낙 지각변동이 큰 시점이라 각각의 업계가 변화를 모색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점은 동의한다”면서도 “왜 랜드사의 어려움에 유독 여행사만 걸고 넘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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