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자연이 살아 숨 쉬는 소박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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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이정찬 기자)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인 루소는 “ 자연으로 돌아가라 ” 고 말했다 .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 ‘ 자연 ’ 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한 자연 속에서 느끼는 원시적 감동은 온전한 ‘ 나 ’ 를 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 태국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 , 치앙라이는 원시자연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루소가 극찬할 만한 곳이다 .

대자연 속 소박한 생활 , 아카족을 만나다

태국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치앙라이는 북부 중심도시인 치앙마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 미얀마 , 라오스의 국경과 맞닿는 이른바 ‘ 골든 트라이앵글 (Golden Triangle)’ 이라 불리는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

치앙라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작고 아담한 건물 때문인지 , ‘ 국제공항 ’ 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 비행기 운항도 많지 않아 공항 안은 비교적 한산한 편 . 공항을 나오니 따뜻한 햇살과 청명한 하늘 , 그리고 대기해 있던 지프차가 반겨 준다 . 지프차는 공항을 빠져나와 치앙라이 시내 중심가를 무심히 지나쳐 , 서쪽으로 향한다 .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심가를 거닐고 ,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 그보다 더 중요한 원시적인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 바로 고산족을 만나러 간다 .

치앙라이의 면적 중 78% 는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 그 속에는 우리가 고산족이라고 부르는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다 . 이들은 원래 중국과 티베트 , 미얀마 , 라오스 등지에서 살다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 고산족은 낮은 언덕과 계곡에 마을을 이루는 부족들과 해발 1,000 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생활하는 부족들로 나뉘며 , 총 9 개 부족이 있다 . 그중에서 오늘 만나게 될 ‘ 아카 (Akha) 족 ’ 은 고지대에서 살고 있다 . 고산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 . 치앙라이 시내에서 두 시간 남짓 지프차로 달리고 , 다시 울창한 숲을 걷는 험난한 (?) 여정을 통해 아카족 마을에 닿는다 . 산 정상 부근 경사면에 자리 잡은 마을은 산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소박함을 엿볼 수 있다 . 이 소박함은 아카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의 온화한 표정 속에서도 느껴진다 . 은화와 세공장식을 매단 커다란 모자가 흥미로웠는데 , 이들은 모자를 벗으면 악령이 씐다고 믿기 때문에 평상시는 물론 잘 때도 쓰고 잔다고 한다 .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이들의 신앙 , 소박한 생활 , 그리고 저 아래 드넓게 펼쳐진 원시림들을 바라보니 새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이다 .

왕비의 헌신으로 탄생한 매 파 루앙 가든

아카족이 사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치앙라이에서 가장 신선하고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져 있는 도이 퉁 (Doi Tung) 이 있다 . 태국 왕비가 생전에 이곳에 직접 별장을 건설했으며 , 생을 마감한 장소인 도이 퉁 로얄 빌라는 지금은 수많은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

도이 퉁 내에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바로 매 파 루앙 가든 (Mae Fah Luang Garden) 이다 . 현 푸미폰 국왕의 어머니 스리나가린드라 (Srinagarindra) 왕비가 80 년대 후반부터 90 년대 중반까지 조성한 이 유럽풍 정원은 타이의 알프스라 불리고 있다 . 형형색색의 꽃의 향기가 진동하는 이 정원은 왕비가 마약중독에 빠진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 아편을 재배하며 , 어려운 생활을 해오던 고산족들은 이곳에서 꽃과 식물을 재배하며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

스리나가린드라 왕비는 당시 이들 고산족을 직접 찾아 생활하며 ,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주민들과 친근한 교류를 나누었다 . 고산족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마약을 퇴치하는 데 앞장섰던 왕비의 노력으로 골든 트라이앵글의 태국지역은 마약이 근절되었다 . 한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왕비가 ‘ 국민의 어머니 ’ 로 추앙받는 이유이다 . 이 생태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계곡과 수목 , 꽃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아름다운 운치를 만끽할 수 있다 .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왕비의 노력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 오늘도 그 헌신적인 마음들이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 .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효심 , 왓 롱 쿤 사원

치앙라이 시내에서 뚝뚝 ( 택시개념의 이동수단 ) 을 타고 남쪽으로 13km 가량 내려가 왓 롱 쿤 사원 (Wat Rong Khun) 을 만난다 . 태국의 유명한 화가이자 건축가인 찰름차이 코싯피팟 (Chalermchai Kositpipat) 이 1997 년부터 짓고 있는 이 사원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뚝뚝에서 내리자마자 화려한 사원 건물들의 위용에 넋을 잃게 된다 .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지만 , 앞에 펼쳐진 눈부신 아름다움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 사원 전체가 흰 색으로 지어져 있기 때문에 백색사원 (White Temple) 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이 건설되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

어느 날 화가 찰름차이의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나 지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으니 , 사찰을 지어 자신의 죄를 씻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 꿈을 꾸고 난 후 사찰 장소를 물색하던 그는 이곳 치앙라이에 사원을 짓겠다는 건의를 정부에 했고 , 결국 받아들여져 이 사원이 건축되기에 이른다 . 그 후로 유명관광지가 된 이곳은 태국의 각계각층의 기부를 받아 더욱 커다랗게 조성되게 된다 . 한 사람의 효심이 태국 국민 전체의 불심을 움직인 것이다 . 이 날 운 좋게 찰름차이를 만날 수 있었는데 ,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순수한 미소를 선사해 주었다 .

치앙라이는 1262 년 멩라이 왕이 란나 왕국의 중심으로 세울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며 , 박물관이나 사원 , 저녁시장 등 볼거리가 많다 . 하지만 치앙라이 여행의 묘미를 느껴보고자 한다면 ,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여행이 되길 권한다 .

자연 속 자연으로 들어가 만났던 아카족의 소박한 생활 , 고산족들을 위해 헌신한 왕비의 온화한 모습 , 효심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한 화가 . 이 모두가 자연을 향유하며 ,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루소가 말한 “ 자연으로 돌아가라 ” 는 말이 여행자들의 가슴 속 깊이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가는 길
현재 우리나라의 직항편은 없으며 , 보통 방콕이나 치앙마이를 경유한다 . 인천 – 방콕 구간을 대한항공 , 아시아나 항공 , 타이항공에서 운행하며 , 비행시간은 약 6 시간 걸린다 . 방콕 – 치앙라이 구간은 버스로는 12 시간 걸리며 , 타이항공편으로는 1 시간 20 분 가량 걸린다 . 시차는 서울보다 2 시간 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