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하는 아트에 올인하기로 했어요”

세계정복을 꿈꾸는 팝아티스트, 자신의 몸을 미술관으로 만든 작가,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가, 방송진행자, 광고모델, 패션모델, 걸어 다니는 팝아트, 아트디렉터, 대학 기업마케팅 전문가의 강사…….
이상은 현재 연예인만큼 유명해진 낸시 랭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녀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터부 요기니’라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산 마르코 성당 앞에서 란제리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켜고 비키니를 입은 채 사진을 찍으며 ‘예술’을 한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낸시랭은 이런 퍼포먼스를 멀리 베니스까지 날아가 감행했을까? 그 후 국내에서도 섹시코드로 대중 앞에 선 그녀는 다양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낸시 랭의 S’ 등 케이블 방송의 진행자로 인기를 끌었고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이란 책도 집필해 좋은 평을 얻었다. 그밖에 최근엔 패션쇼의 모델로 나서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 그녀의 도전은 어디까지 계속 될 것인가? 연예인도 아니면서 언론의 관심을 끄는 낸시 랭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낸시 랭을 만나기 전 가졌던 의문부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돼 인터뷰 후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적어도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낸시 랭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자신감과 독특한 생각 그리고 멋진 꿈들을 듣고 나면 독자들 또한 자신만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낸시 랭의 기사가 되다
인터뷰 시간을 몇 분 남기고 전화가 왔다. “죄송해요. 가고 있는데 좀 늦을 것 같아요. 차가 너무 막혀서…뚜뚜뚜…”

그 후 몇 차례의 통화가 이어지고 그녀가 스튜디오 근처에 온 것은 일곱시가 다 되어서였다.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 일방통행이고 초행인 경우 찾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딱 들어 맞았다. 결국 숙대입구역 출구에 깜빡이를 켠 채 기다리라고 했다. 서둘러서 그녀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비상등을 켠 소형차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가 운전할게요. 자리를 바꾸시죠.”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미안해요. 많이 늦었죠.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서 센터에 맡기고 오느라 늦었어요.”

거듭 사과를 하는 낸시 랭에게 고생하셨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스튜디오로 안내했다.
카메라와 조명이 설치된 스튜디오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좀 전까지 긴장했던 표정도 사라지고 밝고 유쾌한 얼굴로 돌아왔다. 카메라 앞에선 그녀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인터뷰는 촬영이 끝난 후에 하기로 하죠. 그런데 카메라를 좋아하시나 봐요” 환하게 웃는 낸시 랭에게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네, 촬영도 저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져요.”

큐티한 말괄량이 삐삐와 섹시한 육체파 먼로
촬영이 시작되자 낸시 랭은 과감해졌다. 물론 첫 대면부터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거침이 없었지만 무대에선 배우처럼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가죽부츠를 신은 그녀는 영락없는 말괄량이 삐삐였다. 양 갈래 머리가 아닌 단발머리였지만 그녀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해맑은 웃음은 10대의 소녀에 가까웠다.
부츠위로 살짝 올라 온 노란색 양말도 귀여움을 더해주었다. “모두다 제가 코디하고 준비한 것이에요. 이 옷도 제가 꼭 갖고 싶어서 비싸게 구입한 것이고요.”

낸시 랭은 삐삐만큼이나 독특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코코샤넬’이라는 고양이 인형을 자신의 분신처럼 들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함께했다. 주문한 동작 외에도 본인 스스로 촬영에 도움이 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녀는 촬영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낸시 랭이 두 번째로 준비한 옷은 표범무늬 원피스였다. 처음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역시 낸시 랭이 생각해낸 컨셉이었다.
가슴의 브이라인이 드러나는 섹시한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좀 전의 삐삐에서 20대 후반의 육체파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되어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몸의 일부가 또 다른 낸시 랭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와 비슷했다. 직접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촬영을 통해서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 1시간에 가깝게 촬영을 마치고 미리 사온 식은 피자를 한 조각 먹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카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보험회사에서 카센터로 차를 찾으러 온다고 했다. 청담동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할 시간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사실상 어려웠다. 결국 많은 질문을 뒤로하고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들어 보는데 그쳤다. (낸시 랭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녀의 홈페이지 www.nancylang.com를 찾아가 보기 바란다.)

‘앤디 워홀’과 ‘7막7장’ 그리고 ‘Jesus’
지금의 낸시 랭이 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멘토는 무엇 또는 누구냐는 질문에 그녀는 “홍정욱 의원의 ‘7막7장’과 앤디 워홀, 예수님이죠. ‘7막7장’을 중학교 때 읽고서 나도 예일대에서 미술을 전공해야지 결심했어요. 앤디 워홀과 예수님은 나의 정신적 스승이구요.”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로 앤디 워홀 외에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을 꼽는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나봐요’하고 묻자 그녀의 답은 예상외로 길었다.

“부모님 사업이 실패하기 전인 20대 초반까지는 돈 걱정 안하고 살았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최고급 수입 브랜드 옷만 입었고, 테니스, 피아노는 물론 피겨스케이팅도 전문강사로부터 배웠어요. 중학교 때는 반 친구들을 모두 불러 생일파티를 열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다른 과목보다 영어 등 어학과 예체능을 좋아했고 특히, 미술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공주처럼 모든 것을 누리며 살던 낸시 랭에게 생애 처음으로 닥친 불행은 거대한 태풍이었다. “부모님 사업이 실패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처음 2년 동안 방황을 했어요.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낸시 랭은 필리핀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홍대 서양학과와 홍대대학원을 나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트에 올인하기로 결심한다. 기존의 순수미술(파인아트)이 아닌 돈이 되는 팝아트에 도전한 낸시 랭은 자신의 작품을 최고의 가격으로 팔기위한 마케팅을 병행한다.

‘Just be your self. Dream and Go for it!’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낸시 랭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미술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비상구가 필요했던 그녀에게 당시 베니스행은 기사회생이 된 셈이다.
동양에서 온 작은 여자가 가부키 배우처럼 분장하고 란제리와 비키니 차림을 한 채 ‘잡음’에 가까운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서양인들의 눈엔 기묘한 광경이었지만, 수천명의 파란눈들이 그녀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낸시 랭은 앞으로도 방송진행과 강의, 모델, 패션쇼 등의 작업에 참여할 생각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자신의 작품세계와 동떨어지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단호히 거절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올인 하고자 하는 작품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낸시 랭은 지금까지 보수적인 미술계에 이단아처럼 광풍을 몰고 왔으나 본질은 왜곡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창작으로서 미술작업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퍼포먼스와 작품세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Just be your self. Dream and Go for it!’ 낸시 랭이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다. 그 자신과 작품, 꿈이 모두 이 메시지에 함축되어 있다.

“제 꿈은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에요. 그로 인해 부와 명성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서울을 뉴욕, 런던 같은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어 국가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어요. 그래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자양분이 좋아야 해요. 제가 국내에서 아직은 생소한 팝아트를 통해 젊은 후배 아티스트를 후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작가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첫 개인전이에요. ‘현찰’이 필요하거든요.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지만 시간과 돈이 없어 개인전을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러기 위해서 낸시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끝으로 그녀에게 당신의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다. 낸시 랭이 커다란 눈을 반짝거리며 답한다.

“패리스 힐튼이 가장 큰 나의 경쟁자라고 생각해요. 그녀를 대부분 싫어하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행위들은 모두 뉴스가 되잖아요.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죠. 나또한 전세계에서 힐튼만큼 영향력 있는 명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낸시 랭은 자신은 힐튼과 달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세계적인 팝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부연했다.

한편, 최근 팝 아티스트 낸시랭의 침대 셀카가 공개돼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낸시랭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시랭이가 처음 도전하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번주 금요일부터 충무아트홀 블루소극장에서 첫 공연 시작돼요~ 이것 준비 때문에 열심히 살았네요~ 모두 낸시 보러와야지! 날짜 맞춰봐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낸시랭은 코코샤넬과 함께 대본을 보며 누워있다. 특히 검정 끈나시 사이로 볼륨감넘치는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
한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의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낸시랭을 비롯해 황정민, 임성민, 김세아 등이 출연한다. [사진_낸시 랭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