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널린 게 먹을거리다 . 막 따온 진달래로 화전을 부치고 , 밥을 움켜쥐어 만든 주먹밥 위에도 눈이 호사스러울 만치 화려한 색색의 야생화를 얹는다 .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풍경이 아름다운 경북 문경의 윤필암 .
민들레 , 당귀 , 쑥 , 씀바귀 등의 산야초가 별 가공 없이 눈앞에서 뚝딱 봄나물이 되고 , 반찬이 된다 . “ 우린 사서 만드는 게 하나도 없어요 . 사방에 먹을거리가 지천인데 살 게 뭐가 있어요 . 저기 보세요 . 섬기린 , 초롱꽃 , 진달래 … 야생화가 곧 식재료죠 .” 이곳 선원장 은우 스님의 말씀이다 . 산사의 밥상은 자연과 같다 . 그러나 푸성귀로 만들었다고 모두 사찰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산사의 상차림에는 세 가지 법도가 있다 . 청정 , 유연 , 여법이 그것인데 , 청정함은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깃들지 않은 청정한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 유연함은 스님의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음식이 짜고 맵지 않아야 한다는 것 , 여법은 양념을 하더라도 단 것 , 짠 것 , 신 것 , 장류 순으로 과하지 않게 ,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는 의미다 .
이러한 조리법은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행자 시절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수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 산사에서는 음식 만드는 과정 역시 수행의 하나이다 보니 조리법은 간단해 보여도 조리하는 데는 수행하듯 긴 시간이 걸린다 . 그 정성만큼 맛도 향도 깊은 건 당연한 일 .
윤필암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나고 , 그 뒷맛이 오래 남는다 . 윤필암 요리를 한번 맛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는 것만 봐도 이곳만의 비책이 없을 리 없다 . 선원장 은우 스님의 귀띔에 따르면 , 그 비책은 흠집 난 파사과로 만든 초 . 초는 모든 음식에 기본으로 들어가며 평소엔 물에도 타 음료수처럼 마실 만큼 일상적인 재료지만 , 만드는 과정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 가을이면 주변 사과 농장들 덕분에 새빨갛게 물드는 윤필암에서는 , 깨끗이 씻어 썬 파사과에 누룩을 뿌리고 설탕을 켜켜이 넣고 봉한 후 1 년을 꼬박 숙성시킨다 .
1 년 후 삭은 찌꺼기를 걸러내어 버린 뒤 5 년 이상 숙성시켜야 비로소 윤필암만의 초가 탄생된다 . 또 이곳은 ‘ 야생화의 천국 ’ 으로 알려진 만큼 주변 산 , 들에 이름 모를 꽃과 풀이 많아 죽순나물과 갓김치 등 싱싱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더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
이른 봄 , 겨우살이를 위해 비축해 놓은 먹을거리들이 동이 나기 시작할 무렵이지만 윤필암은 넉넉한 저장고 덕분에 걱정이 없다 . 된장 , 고추장 , 간장 등의 장류와 장아찌류 , 파 , 마늘 대신 간장으로만 맛을 낸 김치가 윤필암의 봄을 책임진다 . 저장고 한쪽엔 무청을 꾸덕꾸덕 말려 소금에 절여놓은 우거지가 눈에 띈다 .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삶아 우거짓국 , 우거지찌개 등을 해 먹는다 .
섬유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무와 무청은 절집의 ‘ 산삼 ’ 이다 . 스님들에게는 육류 이상의 영양 공급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 또한 그때그때 나는 제철 재료를 건조시켜 보관해 놓고 요긴하게 사용한다 . 다시마 , 목이버섯 , 박고지 , 무말랭이 , 쑥가루 등은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식재료다 .
[ 진달래화전 ]
재료 – 찹쌀가루 , 진달래 꽃잎 , 설탕 , 식용유
만들기 1_ 찹쌀가루는 따뜻한 물에 익반죽한다 . 2_ 반죽한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빚어 기름 두른 팬에 지져낸다 . 양쪽 모두 다 익었을 즈음 깨끗하게 씻어 물기 없앤 진달래 꽃잎을 얹는다 . 3_ 쟁반에 설탕을 얇게 펴놓은 후 지져낸 화전을 올려 설탕을 살짝 묻힌다 ( 찹쌀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엉겨 붙어버린다 ).
윤필암이 자리한 경북 문경은 오미자차 생산량의 40% 가 재배되는 차의 고장 . 오미자 과육에는 사과산이 많아 신장에 특히 좋고 피로 해소와 감기 예방에 좋으며 , 기침과 갈증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 오미자차 , 송화차 , 말차 , 박화차 … 절에서 차는 단순히 마실거리 , 그 이상의 의미다.
“차는 곧 배려하는 마음이죠 . 좋은 물을 정성껏 끓이고 , 다완에 찻잎을 넣고 찻물을 부어 우려 상대방의 찻잔에 옮겨주는 일련의 과정 , 주변의 공기까지 따뜻하고 아늑하게 바꿔주는 게 차 한 잔의 힘입니다 .” 은우 스님은 입이 자주 마르고 갈증이 심하다는 동행 기자에게는 오미자차를 ,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기자에게는 개나리색 송화차에 붉은 매화꽃 한 잎을 얹어 내주신다 .
특히 정신 안정에 좋은 박하차를 좋아한다는 스님은 좋은 물이 좋은 차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 “ 우린 차를 마신 후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 입 안 가득 차향이 남아 있어 이 마무리 물 한 모금 역시 훌륭한 차가 됩니다 . 그래서 절집에서는 물도 백차라 하여 차 대우를 하는 거예요 .”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 , 샘물 , 우물물이 찻물로 가장 좋다 . 지하 암반수는 물은 깨끗하지만 , 차 맛은 덜하다 .
" 차는 곧 배려하는 마음이죠 . 좋은 물을 정성껏 끓이고 , 다완에 찻잎을 넣고 찻물을 부어 우려 상대방의 찻잔에 옮겨주는 일련의 과정 , 주변의 공기까지 따뜻하고 아늑하게 바꿔주는 게 차 한 잔의 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