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 허용선 기자]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 ㎞ 로 , 기차로는 6 박 7 일 걸린다 . 지구둘레의 4 분의 1 에 가까운 엄청난 거리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의 20 배가 넘는다 .
거쳐 가는 중요한 역만 하더라도 59 개나 되며 시간대는 7 번이나 바뀌는 세계 최장의 기찻길이다 .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시베리아의 장관인 바이칼 호수를 지나 이르쿠츠크 , 부랴트족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울란우데를 지나 끝없이 서쪽으로 달려간다 . 마지막 7 일째가 되면 종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한다 .
인천에서 비행기로 약 2 시간 걸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횡단열차를 타고순백의 대설원을 달리는 ‘ 시베리아 문화 ’ 체험을 했다 . 동 ( 東 ) 시베리아의 울창한 산림과 광야 그리고 초원지대를 차창으로 보거나 동행한 일행과 정담을 나누는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 가는 도중 우리와 외모가 비슷한 부랴트족이 사는 울란우데 , 세계 최대의 호수인 바이칼호 , ‘ 시베리아의 파리 ’ 라 불리는 이르쿠츠크 ,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점 ( 모스크바에서 출발할 경우 ) 이다 .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자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 洲都 ) 다 .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블라디보스토크은 과거에는 군사도시라서 항구 부근에는 외국인은 사진촬영은 물론 아예 출입조차 금지되었다 .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사진촬영 역시 특별한 곳을 제외하곤 어디서든 가능하다 . 해변가에는 레스토랑들이 많아 갓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과 바다가재 요리를 먹을 수 있다 . 시내에는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10 대의 적함을 침몰시켰다는 잠수함 , 일제 때 이곳에서 살던 한국인의 역사가 있는 신한촌 , 러시아 정교회 사원 , 앙가라 강변 , 쌈지공원 등이 볼만하다 . 북한 사람들이 직접 와서 운영하는 식당도 있었는데 방문 당시 아리따운 북한 아가씨 두 명이 음식접대와 춤과 노래를 보여주었다 .
흥미로운 열차 내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기차는 자작나무 숲 , 아담한 정착촌 , 광활한 스텝지역을 번갈아 가며 지나가는데 절로 시베리아의 광활함이 느껴진다 . 아름다운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하려고 했는데 방안 내부의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 대신 4 인승 방 앞 복도의 창문은 조금 열 수 있어 찍을 수 있었는데 때로는 유리창에 카메라를 바짝 대고 그대로 촬영했다 . 열차는 침대칸은 요금에 따라 2 인실 , 4 인실 , 6 인실 등으로 나뉘며 베개와 이불이 제공된다 .
객차마다 러시아 특유의 구리주전자인 사모바르라고 불리는 물통이 있는데 항상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다 .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차나 커피를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은 컵라면을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맛있게 먹는다 . 긴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문제인데 우리 일행이 탄 기차는 다행히 아침 외에는 붐비지 않아 사용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
하지만 머리를 감으려면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좁은데다가 차장이 샤워나 머리감는 것을 못하게 하므로 눈치를 보아가며 몰래 감아야했다 . 감고 나니 너무도 머리가 시원했다는 기억이 지금도 생각난다 .
기차에선 차장이 아침 , 저녁 식사를 전해주었는데 흑빵에 치즈나 베이컨을 섞어먹는 것도 좋았다 . 매운 것이 몹시 먹고 싶을 때에는 아예 흑빵에 고추장을 발라 먹었다 . 입맛이 전혀 없을 때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컵라면 , 인스턴트 쌀밥과 죽 , 김 , 김치 , 과자 등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
기차가 정거장마다 잠시 쉴 때 휴식도 취할 겸 밖으로 나가 사진촬영도 하고 현지 주민들이 음식물을 만들어 파는 것을 구입하곤 했다 . 열차 바로 앞에서 러시아 아주머니들이 파는 것은 보드카 , 음료수 , 찐 감자 , 말린 물고기 , 빵 등이다 . 기차 안에는 식당차도 있어 이용가능한데 가격은 좀 비싼 편이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전 우려했던 것이 혹독한 추위였다 . 하지만 열차 내의 난방은 잘되어 있었고 바깥 기온도 12 월이었지만 온난하여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 하지만 이르쿠츠크에선 살을 에이는 듯 한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다 . 소변을 보면 그대로 얼어버릴 정도였는데 영하 40 도 이상으로 바깥에 오래 있다가는 동상이나 동사는 시간문제였다 .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를 침공한 독일군이 참패한 원인 중 하나가 엄청난 추위 때문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
시베리아 한복판을 달리는 열차에서 차창 밖 풍경을 보는 것도 점차 호기심이 사라질 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거나 독서 , 음악 감상을 하는 일이다 . 때로는 같이 간 사람들과 보드카 같은 술을 앞에 두고 온갖 잡담을 하는 일이다 . 술이라는 것은 묘한 존재여서 그냥 대화하라면 10 분 정도 밖에 못할 것인데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면 밤새우고도 계속 대화를 한다 .
전혀 본적이 없었던 러시아 사람과도 보드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래 말을 할 수 있다 . 러시아 말을 못해도 간단한 영어와 보디 랭기지로 의사소통을 한다 . 러시아 남자들은 보드카를 벌컥 들이마신 후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마시곤 했다 . 안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잡히는 ‘ 오물 (omul)’ 이라는 생선과 소시지를 좋아했다 .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광활한 시베리아 지역은 과거엔 춥고 메말라 생명체가 살기 힘들었다 . 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하면서 많은 사람이 오가고 곳곳에 도시나 마을이 생겨났다 . 석유나 석탄 등 거대한 지하지원이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보고 ( 寶庫 ) 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 언젠가는 한국에서 출발한 기차가 북한 땅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연결되어 러시아는 물론 유럽 쪽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물류공급 라인이 열릴 것이다 .
시베리아의 면적은 412 만 3 천 800 평방미터로 남한 면적의 41 배에 달한다 .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동방에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을 건설하고 나아가서는 시베리아의 철 , 석탄 , 목재 , 모피 등을 잘 조달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것이다 . 1916 년 유럽에서 들여온 차관을 이용하여 착공한 지 25 년 만인 1916 년 완성된 세계에서 가장 긴 낭만적인 철도다 . 철도의 건설과 더불어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 개발되기 시작했다 .
횡단열차로 돌아본 이름난 관광명소
열차를 타고 지나쳐온 도시 중 하바로프스크는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 ‘ 하바로프스크 ’ 라는 이름은 그 도시 건설에 공이 큰 탐험대장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는 일제 치하에서 피난 나온 조선족들이 살던 곳이다 .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간도에 살던 많은 조선족을 일본의 스파이로 의심한 스탈린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
식량 등 이렇다 할 준비도 못하고 떠난 상당수의 조선족이 기아와 추위로 죽었다 .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2 세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힘차게 살고 있다 . 하바로프스키는 많은 애국지사들이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이용했던 곳이다 . 상하이 임시정부 총리를 지낸 이동휘 ( 李東輝 ) 선생이 1918 년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곳도 하바로프스크다 .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올란우데를 출발해서 몇 시간 후면 마치 바다처럼 드넓은 바이칼호수가 나타난다 . 이 구간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다가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려 일을 보고 다시 다음 열차를 타고 떠날 수 있다 . 바이칼 호수 등을 보려고 기차에서 내렸다 .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다 .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숲 , 그리고 호수 주변의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 ‘ 시베리아의 진주 ’ 로 불리는 바이칼 호수는 3000 만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불가사의한 곳이다 . 바이칼 호수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741m 나 되며 길게 남북으로 뻗은 호수 길이가 서울에서 부산가는 길이보다 긴 640km 나 된다 .
세계에서 가장 깊고 깨끗하고 많은 담수량을 지닌 바이칼 호수의 면적은 남한 땅의 3 분의 1 에 이른다 . 바이칼 호수에 담겨있는 물이 세계의 담수량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
‘ 시베리아의 파리 ’ 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 (irkutsk) 는 앙가라강과 바이칼 호수를 잇는 정기선 및 시베리아 철도가 다니는 교통상의 요지다 . 시내에는 바이칼 호수의 근원인 앙가라강이 흐르며 200~300 년 된 고풍스런 건축물이 많다 . 나폴레옹 전쟁 후 러시아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한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이곳에 귀양 온 청년장교들과 그의 가족들이 정착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아시아 지역으로 유배 와서도 귀족들이 모스크바에서 살던 방식대로 살았고 생활양식 역시 유럽풍이었다 .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도 높고 지적인 자부심도 강했는데 이러한 전통이 지금도 남아있어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에서 문화수준이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
이르쿠츠크는 인구 80 만에 러시아에서도 알아주는 중요한 도시다 . 주요 산업은 목재와 섬유이며 , 천연가스도 많다 . 앙가라강의 우안 하류지역에 이르쿠츠크의 중심부가 자리한다 . 행정기관과 각종 상업시설이 많고 여러 종류의 극장 , 시민공원 ,· 키로프 중앙광장 등이 있다 .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에는 이곳만의 독특한 전시품이 있다 .
글 . 사진 허용선 ( 본지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