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대만 최대 국경절 쌍십절 의미 퇴색하는가?

[ 아시아엔 =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 대만 최대의 국경절인 쌍십절 ( 雙十節 , 10 월 10 일 ) 행사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는 조짐이다 . 청나라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마련됐던 1911 년의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경축일이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안관계와 국제정세의 여건에서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 . 내부적으로도 통일이냐 , 독립이냐의 지향점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쌍십절의 역사적 의미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특히 올해는 내년 1 월로 다가온 차기 총통선거까지 맞물려 쌍십절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오히려 어수선한 분위기다 . 선거전을 이끌어가고 있는 국민당 훙슈주 ( 洪秀柱 ) 후보와 민진당 차이잉원 ( 蔡英文 ) 간의 신경전에 임기말을 앞둔 마잉지우 ( 馬英九 ) 총통의 레임덕 현상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 건국 104 주년을 맞는 올해의 쌍십절 행사가 앞으로의 연례행사 추진에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될 정도다 .

지난 2010년 중국과 대만이 공동으로 개최한 친화이 등불축제모습

이번 쌍십절 행사에서 불꽃놀이가 취소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 올해 공식 불꽃놀이를 개최하도록 예정됐던 대만 제 2 의 도시 가오슝 ( 高雄 ) 시가 안전문제를 감안하여 행사를 전면 취소토록 건의했고 , 결국 준비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 지난 6 월 신베이 ( 新北 ) 시의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화재사고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 이 사고로 11 명이 목숨을 잃고 500 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니 , 이에 대한 충격이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

쌍십절 행사 중에서도 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이 불꽃놀이라는 점에서 불꽃놀이 취소 소식은 쌍십절 행사에 대한 기대감을 미리부터 반감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 불꽃놀이에는 하늘을 밝고 화려하게 수놓는 폭죽처럼 대만의 미래를 기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 하지만 가오슝시가 관내의 3~4 곳을 대상으로 불꽃놀이 장소를 물색했으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마당에 별다른 대안을 찾을 수가 없게 됐다 .

그러나 가오슝시의 천추 ( 陳菊 ) 시장이 야당 후보인 차이잉원의 선대본부장을 맡았으며 , 부총통 러닝메이트로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꽃놀이 취소로 인해 미묘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양상이다 .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의 기본노선 때문이다 . 국민당과 달리 대륙 시절 중화민국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고 있으며 , 따라서 쑨원 ( 孫文 ) 을 국부로 인정하지도 않고 신해혁명에 대해서도 대만이 아닌 대륙의 역사로만 이해하려는 것이 민진당의 입장이다 .

따라서 천추 시장이 안전문제를 내세워 불꽃놀이를 반납했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당과 민진당 사이의 ‘ 역사논쟁 ’ 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최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개편 문제를 놓고 학생들이 문교부 청사 점거를 시도하는 등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도 고려됐음직하다 . 역사교과서 개편에 따른 마찰도 따지고 보면 중국 대륙의 전체 역사에서 과연 어느 시점부터를 대만 역사로 간주할 것이냐 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기 때문이다 .

물론 대만의 국내 여건으로 인해 쌍십절 행사가 모두 취소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난터우 ( 南投 ) 대지진이 일어난 1999 년의 쌍십절 행사가 전면 취소됐던 것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 무려 2060 명의 사망자와 8700 명의 부상자를 초래했던 만큼 경축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 마라콧 태풍이 몰아쳤던 2009 년에도 정부 주최 쌍십절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고 , 행사 비용은 전액 태풍피해 복구에 투입됐다 .

지난해에도 쌍십절 불꽃놀이 행사가 타이중 ( 台中 ) 에서 열리긴 했으나 우여곡절이 따랐다 . 가오슝에서 지하에 매설된 가스관의 연쇄폭발 사고가 일어난 데다 대만해협의 펑후 ( 澎湖 ) 섬에서 국내선 여객기의 추락사고가 이어졌던 까닭이다 . 연달아 일어난 이들 사고로 모두 70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 300 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조기 ( 弔旗 ) 를 게양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

쌍십절 행사를 치르는 비용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 . 대략 6000 만 ~8000 만 대만달러가 소요된다 . 우리 돈으로 따져 적게는 22 억원 , 많게는 29 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 이 가운데 불꽃놀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1000 만 대만달러 안팎에 이른다 . 그만큼 비용을 아낀다는 취지도 감안한 조치다 .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차이잉원 후보가 이미 3 달 전부터 올해 쌍십절 행사에 직접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 여야를 떠나 정치 지도자로서 정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차이 후보가 지난 6 년 동안 쌍십절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점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그동안 뒷전에서 팔짱 끼고 있다가 내년 선거에서 승리가 유력해지니까 이제 와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만하다 .

이에 대해 국민당의 훙슈주 후보가 “ 그동안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한 해명 한마디 없이 미리부터 기념식 참석을 예고한 이유가 뭐냐 ” 라며 날선 공격을 퍼붓는 것은 당연하다 . 지금껏 쌍십절 행사를 일부러 외면한 것은 신해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만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음을 솔직히 인정하라는 공격이다 .

그러나 훙슈주 자신도 민진당의 천수이볜 ( 陳水扁 ) 총통 시절이던 2000 년부터 2005 년까지 쌍십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양측 공방이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다 . 입법위원 신분이었는데도 기념식 참석을 거부했던 것은 정치적인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밖에 달리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 훙슈주는 2006 년 행사에는 참석했지만 , 그때도 정부 행사에 동조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천수이볜의 퇴진을 촉구하는 ‘ 붉은 셔츠 ’ 를 입고 기념식장에 나타난 것이어서 이래저래 정치적인 논란만 가열되고 있다 .

더구나 올해는 경제 여건도 좋지 않은데다 뎅기열까지 번져가고 있어 쌍십절을 기념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이다 . 당초 3% 대로 전망했던 GDP 성장률이 1% 대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고 있다 . 뎅기열도 지난 5 월 첫 발병한 이래 타이난 ( 台南 ) 을 중심으로 남부지역에서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 여기에 뒤쥐안 태풍의 피해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

하지만 불꽃놀이는 취소됐을망정 쌍십절 기념행사는 예정대로 추진된다 . 타이베이 총통부 청사 앞 광장에 청천백일기 ( 靑天白日旗 ) 가 게양되고 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군대 행진과 사자춤 , 드럼악대 등 민속공연 행렬이 뒤따르게 된다 . 전국 대도시 거리에도 청천백일기가 자랑스럽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 내년 선거의 결과에 따라 쌍십절 행사의 정치적 주최가 또 바뀌게 되는 것은 다음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