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맛, 흥을 찾아서

쌀쌀한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 청승맞게 웬 바다냐고 물으신다면 ‘ 그래도 바다지 !’ 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 환상적인 일몰과 감성을 자극하는 파도 소리 , 그리고 맛있는 해산물 . 많은 관광지가 있다지만 진정한 휴양지는 얼마나 될까 ? 여기 말 그대로의 ‘ 휴양 ’ 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 가족과 함께라면 더 즐거운 국내 유일무이한 휴식처 , 이정도면 부안을 가을여행지로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

가을 아침 , 마음 한 편 부안의 바다를 새기다

변산반도를 끼고 자리 잡은 전북 부안 . 변산을 반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륙의 내변산과 해안의 외변산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 157 ㎢ 에 이르는 깨끗한 해변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1988 년에는 20 번째 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됐다 .

서울에서 부안까지는 자량으로 3 시간가량이 소요된다 . 한참 차를 달려 부안 군청 근처 터미널에 도착 했다면 , 30 번 도로를 타고 변산 해수욕장으로 길을 정하자 .

해변에 도착할 무렵 , 바다를 가로지르는 회색 선이 보인다 .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방조제로 그 길이가 33.9km 에 이른다 . 부안 방면에서 출발하면 1 호 방조제 끝에는 가력배수갑문 광장 , 2 호 방조제 중간 너울 쉼터 , 소라 쉼터 그리고 바람 쉼터가 나온다 . 이곳 쉼터에는 방조제를 보러온 방문객들로 가득하고 찬바람을 피해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

인간이 만든 거대한 건설물이 자연 속에 녹아있는 모습은 , 자연과 인공은 공존하기 어렵다는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린다 . 방조제 건설 초 , 모래를 나르기 위해 수백 대의 덤프트럭이 줄 지어 있었다는 인근 주민은 이곳을 보러 온 관광객 덕분에 지역 살림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

방조제를 지나 5 분가량 더 달리면 해수욕장 안내문을 볼 수 있다 . 백사장에는 화려했던 여름의 모습은 없지만 가을바다는 차분한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 이곳을 더 유명하게 한 것은 육당 최남선이 조선 10 경 중 하나로 꼽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파란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반사되는 태양은 변산해수욕장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 시켰다 .

터미널부터 이어지는 30 번 해안도로는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이 끈임 없이 펼쳐지는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다 . 오른편의 바다와 왼편의 마을을 감상하다 멋진 포인트를 찾는다면 꼭 차를 세우고 사진으로 담아두자 . 코스를 추천 한다면 , 변산 교차로에서 우회전 , 이어서 운산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해안을 끼고 가는 도로가 나온다 .

가을 전어가 집나간 며느리를 부른다면 , 이 코스는 토라진 애인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도 로맨틱하게 바꾸는 마법의 코스다 . 시간은 두 배 가 넘게 더 걸리지만 꼭 이 도로를 이용하자 .

출출하다면 , 격포항을 지나칠 수 없다 . 이곳은 항구의풍경도 좋지만 ,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해산물도 일품이다 . 봄철 쭈꾸미 , 가을에는 전어 등 온갖 싱싱한 해물이 다양하다 . 바다 향이 가득한 이곳의 명물 백합죽과 제철 생선 , 횟감은 식도락의 발목을 잡는다 . 더구나 이곳은 ‘ 맛 ’ 의 고장 전라도 아닌가 ? 실하게 살이 오른 백합과 탱글탱글한 회 한 점은 오전 내 운전으로 괴로운 몸을 깨워준다 .

오후 , 서해안에 가득한 태양의 축복

햇살이 따스한 오후 , 격포항 수산시장을 둘러보자 . 상인들이 판매하는 횟감과 조개들은 모두 이곳에서 잡은 것들이다 . 해산물을 구입해서 주변 식당에 회를 떠달라고 부탁을 해도 , 집까지 직송도 가능하다 .

발길을 돌려 채석강을 둘러보자 . 변산 8 중 하나인 채석강은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

흔히 강으로 오해되기 쉬운데 강이 아니고 바닷가의 절벽이다 . 절벽은 책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 여러 색이 조화를 이룬다 .

“ 여까지 와서 부안댐 안 보고 가믄 쪼까 그렇줴 ”

채석강에서 만난 주민의 추천에 부안댐으로 목적지를 잡는다 . 댐은 1991 년에 착공해서 1996 년에 완공됐고 높이는 50m 에 달한다 . 평일이라 한산한 댐은 휴일이면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단다 . 시원스럽게 조성된 공원과 주변 산의 풍경은 여유를 즐기기에 좋고 , 물 문화관은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해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다 .


부안댐에 오르면 준공기념비와 작게 공원이 조성돼 있고 , 댐을 만들면서 생긴 부안호를 볼 수 있다 . 낮은 산세와 어우러진 호수의 모습은 근처 전주와 군산 주민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애용된다고 한다 . 특히 , 이곳의 가을 단풍은 설악산 못지않다고 여행객의 칭찬이 자자하다 .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곰소항으로 떠나자 . 곰소 = 젓갈 , 이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 해마다 김장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아주머니들이 이고 싸고 싣고 간다는 젓갈과 소금의 고장 곰소 . 이곳은 원래 섬이었다고 한다 . 예전에는 줄포항을 통해 배들이 다녔지만 , 토사가 쌓여 뱃길이 막히게 되자 1942 년 곰소에 제방을 쌓고 항구로 만들었다 . 제방을 쌓자 자연스럽게 소금밭이 만들어졌고 크게 흥했지만 , 지금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

3 월에서 4 월사이면 근처 염전에서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운이 좋게도 이 날은 염전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파랗게 물든 염전 , 그 속에서 작업하는 염부의 다리는 하늘과 닿아있다 . 삼 남매 모두를 염밭일로 출가 시켰다는 염부는 이제 아무도 염전에 관심이 없어 자기 대에서 일이 끊길 것 같다고 한다 . 온통 굳은살 투성이인 그의 손에서 짭조름한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차를 돌려 향한 곳은 젓갈 시장 .

“ 맛 좀 보고가요 , 여기 젓갈이 우리나라 최고요 ”

이쑤시개로 찍어 주는 색색의 젓갈 , 맛은 모두 다르지만 신선함을 뜨거운 쌀밥을 생각나게 한다 . 마침 그 곳에서는 젓갈 백반도 판매한다고 하니 맛을 안 볼 수 있는가 . 7 천원에 10 가지가 넘는 젓갈과 국 , 반찬이 나온다 .

“ 이것은 바지락 , 이것은 가리비인데 … ”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그 모습에서 아직은 푸근한 인심이 느껴진다 .

오늘 아침 / 따듯한 한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소박하지만 푸짐한 인심과 정이 있는 곳 . 부안은 정이 그리운 여행객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 정 ( 情 ), 맛 ( 味 ), 흥 ( 興 ) 를 갖춘 곳 , 부안의 겨울 바다는 지금도 여행객을 기다린다 .

여행팁
일몰을 보기 좋은 장소로는 솔섬과 채석강을 추천한다 . 밀물이 들어올 때 , 솔섬 사이로 지는 태양과 황금빛 바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